사실을 '보고'하지 않고, 관점을 '공유'하기로 했다
사람들은 흔히 타인의 평가가 그저 '취향'의 영역일 뿐, 나의 '가치'를 결정하지 않는다고 위로한다. 좋은 방어기제다. 하지만 소개팅이나 면접처럼 선택받아야 하는 자리에서 거절이 반복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열 번 찍어도 문이 열리지 않는다면 도끼날을 의심해 보는 게 합리적이지 않을까? 그저 "상대의 취향이 아니었을 뿐"이라고 치부하기엔, 마음 한구석의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선 '존재로서의 가치'와 '맥락에서의 적합성'을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었다. 면접과 소개팅은 나의 존엄성을 판단하는 재판장이 아니라, 상대가 필요로 하는 조건에 내가 부합하는지를 확인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거절당한 것은 '나'라는 사람이 아니라, 그 자리에 맞지 않았던 나의 '조건'이나 '표현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때는 시중의 화술 책들을 탐독했다. 책 속에는 상대를 사로잡는 화려한 기술들이 넘쳐났다. 하지만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이 책대로 말하는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난다면, 나는 그에게 매력을 느낄까?" 아니었다. 오히려 작위적이고 부담스러울 것 같았다. 나조차 설득하지 못하는 기술로 남을 설득하려 했다니, 그야말로 모순이다.
결국 남들이 좋다는 옷을 억지로 껴입기보다, 내 몸에 맞는 옷을 직접 수선해 입기로 했다. 나의 성향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매력적으로 다가가는 법. 긴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단순했다. 단순히 사실을 '보고'하지 말고, 나만의 시선을 '공유'하는 것. 사실의 나열이 아닌, 나의 해석을 더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혼자 코인 노래방에 다녀온 날을 떠올려본다. "오늘 노래방 다녀왔어요. 노래를 잘하진 않아요"라는 납작한 글 대신, 나는 상황을 이렇게 묘사한다.
"혼자 노래방에 다녀왔어요. 실력은 비밀입니다. 기계는 참 냉정했다는 말만 드릴게요."
이 한마디로 '노래를 못한다'는 자학은 사라지고, 점수판 앞에서 쓴웃음 짓는 나의 상황이 위트 있게 그려진다.
나를 소개하는 글을 적을 때도 마찬가지다. "좋은 직장 다니고 돈도 나름 잘 벌어요"라는 말은 사실일지라도 매력은 없다. 대신 나는 나의 일상을 담아 이렇게 건넨다.
"가끔 서점에 가서 표지가 예쁜 책을 집어 들고, 근처 카페로 가요. 다행히 좋아하는 책과 커피 정도는 즐길 수 있는, 제 몫은 하는 직장인이에요."
경제력이라는 민감한 주제가 '책과 커피를 즐기는 여유'라는 취향으로 치환되는 순간, 상대방은 나를 평가하는 대신 나의 주말을 상상하게 된다.
화려한 언변이나 과장된 텐션은 굳이 필요 없다. 그저 팩트 위에 나만의 관점을 얹어 건네는 것. 억지스러움은 걷어내고 담백한 시선을 공유하는 것. 그것이 내가 찾은, 가장 나답게 소통하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