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서만 벗어나면

by 새벽의숲

학교가 싫었다. 거기서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아이였고, 나를 이해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고 싶은 공부 대신 해야만 하는 공부를 억지로 했다. 그때 나는 하나만 믿었다. 여기서만 벗어나면 좋아질 거라고.


그런데 그 생각은, 졸업 이후에도 끝나지 않았다.




'대학에만 들어가면 좋아질 거야.'


대학에 들어갔다. 자유로웠지만, 자유 속에서도 비슷한 무게가 따라왔다. 새로운 관계, 새로운 경쟁, 새로운 불안. 괜찮아, 다음이면 되겠지.


'전역만 하면 좋아질 거야.'


전역했다. 한동안은 해방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 감각은 금방 희미해졌고, 일상은 다시 비슷한 표정을 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취업만 하면 좋아질 거야.'


취업했다. 처음 며칠은 뿌듯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환경이 바뀌어도 나는 여전히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는 걸.


'이직만 하면.' '연봉만 오르면.' '이 프로젝트만 끝나면.'


문장은 끝나지 않았다. 다음 장소, 다음 조건, 다음 단계. 그것들이 나를 구해줄 거라는 믿음은, 결국 지금의 나를 계속 유예시키는 일이었다.




한때, 생각을 바꿔본 적이 있었다. 미래에 행복하겠다고 미루는 대신, 지금 여기에서 괜찮음을 느껴보기로. 변해야 하는 건 환경이 아니라 나라는 걸 받아들여보기로.


그 무렵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서로의 이야기를 꺼내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 사람들. 밥을 먹다가도, 산책을 하다가도, 사소한 것들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들. 그런 것들이 쌓이면서 나도 모르게 뭔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그 변화가 온전히 나의 의지였는지 잘 모르겠다. 좋은 환경이 먼저였고, 내가 바뀐 건 그다음이었을지도. 내가 나를 바꿨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환경이 나를 데려간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환경도 결국은 지나갔다. 사람들은 흩어졌고, 그 시간들도 사라졌다. 환경에 의해 나아졌던 내가, 환경이 흩어지자 다시 흔들리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이렇게 생각하려 한다.


바뀌지 않는 것은 없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나 자신마저도. 지금 이 흔들림도 영원하지 않고, 다시 찾아올 안정도 영원하지 않다. 그것을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것.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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