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가끔 믿기 어려운 장면을 마주한다. 초반에는 "저 사람은 좀..." 싶었던 출연자가 어느 순간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밉상 같던 빌런이 어느새 로맨스의 주인공이 되어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의 성격도 말투도 사소한 습관도 그대로다. 변한 것은 단 하나, 그의 옆에 선 사람뿐이다.
그걸 보면서 예전에 가까이 지냈던 사람이 떠올랐다. 예민한 사람이었다. 그 사람의 말은 내게 날카로움이 되었고, 내가 건넨 가벼운 말은 그 사람에게 상처가 되어 분위기를 얼어붙게 만들곤 했다. 그런데 가끔 생각한다. 다른 사람 곁에서는 그 예민함이 섬세한 다정함이 되지 않았을까. 상대의 작은 감정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채고 차마 말하지 못한 마음까지 읽어내는 사람이 되어 있지 않았을까. 같은 사람인데, 내 옆에서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고집이 센 사람도 있었다. 나의 의견은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대화는 늘 벽에 부딪히는 기분이었다. 결국 그 관계는 조용히 멀어졌다. 그런데 어쩌면 그 사람도 누군가의 곁에서는 달랐을 것 같다. 한번 마음먹으면 끝까지 지켜내는 사람, 쉽게 흔들리지 않아서 오히려 안심이 되는 사람. 내가 답답함으로만 느꼈던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믿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돌이켜 보면 나도 그랬던 것 같다. 누군가의 곁에서는 내 조심스러움이 답답함이 되었고, 또 다른 누군가의 곁에서는 그게 배려가 되었다. 같은 나인데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기분이었다.
장점과 단점이라고 나누지만 사실 같은 성질의 다른 면이다. 누군가의 단점이 유독 도드라져 보인다면 그 사람 자체의 결함이라기보다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조합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결국 같은 사람이다. 어제의 빌런과 오늘의 주인공은 동일한 인물이다. 달라진 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그의 옆자리에 누가 앉아 있느냐 하는 것. 그래서인지 요즘은 그 옆자리라는 게 자꾸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