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상과 현실의 나 사이에 벌어진 거리가 불행을 만든다는 말을 들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흘렸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 완벽하면 좋은 거 아닌가. 높은 기준이 현실의 나를 끌어올려 주는 거 아닌가.
그런데 가만히 내 하루를 들여다보면, 그 거리가 나를 끌어올리는 시간보다 끌어내리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처음으로 3킬로미터를 뛰었던 날이었다. 공원 트랙을 따라 달리는데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고 마지막 몇백 미터는 걷다 뛰기를 반복하며 겨우 채웠다. 멈춰 서서 무릎에 손을 짚고 숨을 고르는데 작은 뿌듯함이 올라왔다. 3킬로미터. 나쁘지 않은 시작이었다. 그런데 고개를 드는 순간, 같은 트랙 위의 다른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보다 훨씬 빠르게, 훨씬 오래, 힘들어 보이지도 않는 얼굴로 달리고 있었다. 그걸 확인한 순간 3킬로 미터라는 숫자는 의미를 잃었다. 남은 건 '겨우 이 정도'라는 익숙한 허탈감뿐이었다.
공원 벤치에 앉아 물을 마시면서 생각했다. 이 목소리는 달릴 때만 찾아오는 게 아니다. 머리를 싸매던 일이 남들 손에 쉽게 풀리는 걸 볼 때, 누군가의 말재주와 순발력이 부러울 때, 별것 아닌 것처럼 살아가는 타인의 여유가 눈에 밟힐 때. 내가 그려 놓은 '나'는 언제나 빈틈이 없는데, 현실의 나는 빈틈투성이다. 이상 속의 내가 매일 아침 현실의 나를 내려다보는 것만 같다. 그 시선이 원동력이 되면 좋으련만, 대부분의 날에는 그저 낙담이 된다.
"넌 아직도 이 정도야?"
언제부터 이 목소리가 생겼는지는 모르겠다. 돌이켜 보면 처음부터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어느 순간 조용히 자리를 잡은 것 같기도 하다. 이 목소리의 정체는 사실 알고 있다. 남이 하는 말이 아니다.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가혹한 평가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친구가 같은 고민을 털어놓으면 "충분히 잘하고 있어"라고 말해 줄 텐데 그 말을 나에게는 끝내 건네지 못한다. 이상한 일이다. 같은 말인데, 나를 향하는 순간 어딘가 거짓말 같아진다. 남의 3킬로미터는 대단하고, 나의 3킬로미터는 겨우다. 그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 모르겠다.
현실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거기서부터 한 걸음씩 나아가면 된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맞는 말이 쉬운 말인 적은 별로 없었다. 받아들인다는 건 체념이 아니다. 트랙 위 어디에 서 있든, 바로 그 지점이 출발선이라고 인정하는 일이다. 지도 위에서 현재 위치를 모르면 어디로도 갈 수 없는 것처럼 지금의 나를 정확히 보는 일이 먼저다.
그래서 오늘은 이상 속의 나를 잠시 내려놓아 보려 한다. 어제의 나보다 한 바퀴라도 더 도는 것, 그것만으로 괜찮다고. 아직 온전히 믿어지지는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