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때려 치고 여행
사실 처음 여행을 시작할 때부터, 나는 여행을 글로 남길 것임을 알고 있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글을 썼고, 지금까지도 계속 글을 쓰는 글쟁이이기 때문이다.
어려서는 혼자 좋아서 글을 썼고, 나중에는 부탁을 받아 썼고, 언제부턴가는 돈을 받고 글을 쓰고 있다.
내게 글은, 어쩌면 거의 유일한 '좋아하는데 돈이 되는(비록 먹고 살기엔 불가능하지만)'일이다.
그러니 여행을 떠나는 내가, 그것도 먹고사는 일을 다 때려치우고 여행을 떠나려는 내가, 글로 여행을 남긴다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여행을 시작하고 핸드폰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공책에다가 멋들어지게 써보려 했으나, 이동하는 버스에서, 푹푹 꺼지는 침대 위에서 글을 쓰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래서 결국 핸드폰에 글을 담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쓰고 있는 걸까?'
하루하루 그 날의 일을 글로 남기려는 내 모습이 불편해졌다. 정말 행복한 여행을 하면서 가장 좋아하는 글쓰기를 하는데, 왜 불편해진 걸까?
그건 마치, 글 쓰는 행위에 대한 어떤 자각 같은 것이었는데, 원인은 단순했다. 글을 쓰는 것에 '생산성'이라는 요소가 너무 깊게 관여하고 있었다.
다 때려치우고 여행을 나왔고, 때문에 소득이 사라졌다는 불안감이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걸 채우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글이었던 것이다.
'스스로가 불쌍해졌다.'
여행을 떠난 이유 중 하나가 생산성을 강조하는 한국의 사회분위기가 답답해서였는데, 여행 가서도 스스로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역시 나는 뼈속까지 한국인이었다.
그 자각 후에, 나는 글을 접었다.
나는 글을 쓰러 온 것이 아니라, 여행을 하려고 온 것이었다.
나는 돈을 벌러 온 것이 아니라, 여행을 즐기러 온 것이었다.
언제부턴가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하고 블로그나 페이스북에 글이나 사진을 올리는 것이 당연해졌다. 몇몇에게는 그것 자체가 여행의 재미이고, 여행의 목적이며 가치일 수 있다. 이들은 괜찮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남들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그 욕구, 남에게 인정받고, 남에게 이야기되어지고 싶은 욕망 때문에 내 것이 아닌 남을 위한 글을 쓰느라 여행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이들은 괜찮지 않다.
부끄럽게도 내가 그러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글을 올리지는 않았지만, 계속 의무감에 글을 쓰면서 나는 여행에서조차 제대로 여행을 즐기지 못하는 한 명으로 스스로를 격하했다.
부끄러워서 접었다. 좋아하는 것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여행이 다 끝나고 나서, 여행의 그 아름다웠던 기억, 행복했던 추억을 잃어버릴까 봐 겁이 나기 시작했을 때, 그때 다시 글을 썼다.
시간이 지나서 기억이 날지 의문이었지만, 날짜별로 정리된 사진을 보자 희미해진 줄 알았던 여행의 하루하루가 다시 생생하게 떠올랐다. 이를 바탕으로 내가 풀어낸 이야기는 여행 중간에 의무감에 써야 했던 글보다 훨씬 '괜찮은' 글이 되어 있었다. 내 안에서 묵혀 놓은 덕분일 테다.
여행이 끝나고 쓰는 글은 여행을 다시 구성하는 것과 같다. 여행을 다시 정리하고, 다시 느끼고, 다시 깨닫는 시간이다. 그 과정을 통해 나는 여행을 진정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모인 글이 책이 되어, 물질로 남았다. 세상에 후손을 남기는 것처럼, 네트워크 상이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무형적 존재가 아니라, 생생하게 존재하는 물리적 존재로서 나의 여행을 남기는 것이다.
여행을 글로 남긴다는 것은 그래서, 여행을 했던 나를 남기는 것과 같다.
마치 신기루처럼, 시간이 흘러 사라져버릴 것이 분명한, 후에는 그저 순간의 환상처럼 남아 버리게 될지도 모르는, 그 순간을 그 감정을 그 느낌을, 글이 오롯이 담아놓는 것이다.
나는, 여행자에게 글을 쓰라 권하고 싶다. 나의 여행이 글로 남아 있는 것처럼, 그대의 여행도 그러길 바라기 때문이다. 여행이라는 그 설렘 가득한 시기가 남는다는 것은, 그것이 누구의 이야기냐에 상관없이 꽤 값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