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함께
문학이 죽도록 싫어서 국어를 피해 공학을 선택했던 소년. 시간이 흘러, 그가 결국 글쓰기로 삶을 표현하게 된 이야기. 칭찬을 들어도 “운이 좋았을 뿐”이라며 겸손했고, 무엇을 하든 자신감이 넘치진 않았다. 하지만 속 마음은 달랐다. 겉으로는 조용하고 무난한 사람처럼 보였지만, 내면 어딘가엔 언제든 누구에게든 이길 수 있다는 근거 없는 믿음이 있었다. 그 과한 믿음은 소년 시절부터 시작돼 성인이 되어 사회인이 된 후에도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사회 초년생 시절, 나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로서 재능이 있고 언젠가는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기업에서 이름을 휘날릴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컴퓨터 관련 과목에서 모두 A 이상의 성적을 받자, 나는 금세 세상을 다 가진 듯 우쭐해졌었다. 그리고 대학교 4학년 2학기, 친구를 따라 우연히 낸 이력서 한 장. 뜻밖에도 바로 취업이 결정되었다. 그 순간마저도 나는 ‘내가 특별해서’라는 착각 속에 있었다. 하지만 착각이라는 나만의 세상은 영원하지 않았다.
이미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던 것 같다.
과거 같은 직장에 다니던 동료가 있었다. 그와 나는 더 나은 회사로 이직을 꿈꿨고, 함께 이직 준비를 위해 퇴근 후 소프트웨어 스터디를 했다. 스터디를 하면서 나는 내심 그 동료보다 내가 더 아는 게 많고 뛰어나다고 여겼다. 그렇게 자만했었다. 그리고 그는 나보다 먼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떠났다. 그러나 나는 그 자리에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무엇이 내가 그와 달랐던 것일까? 업무 능력이나 지식 면에서 큰 차이는 없었다. 그래서 더 혼란스러웠다. 혼자 나만의 세상에서 ‘왜 나는 안된 걸까?’라는 질문을 끝없이 되뇌기 시작했던 건 그때부터였다. 세상은 결코 그냥 나를 봐주는 법은 없다는 것을, 내가 아무리 뛰어나도 보여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뼈저리게 느끼고, 깨달았다. 나는 단지,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라 믿고 있었을 뿐이라는 걸. 마치 지진이 일어나 세상이 갈라지는 것처럼, 내 자존감도 갈라지고 찢어졌다. 찢어지고 봉합하고, 또다시 찢기며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나는 다짐했다. 이제는 더 이상 고통받고 싶지 않다고. 그리고 진짜 나를 보여주고 싶다고. 아무리 위대한 발명이라도 알려지지 않으면, 쓰이지 않으면, 결국 아무 의미도 남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그렇게 나를 표현하는 방법으로써 글을 쓰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흩어져 있던 생각의 조각들을 하나씩 꺼내 모아 하나의 스토리로 만듦으로써, 내가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려 하는지를 정리하며, 사적인 글쓰기로 나만의 노트에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적인 글쓰기를 하던 와중, 우연히 ‘브런치스토리’를 알게 되었다. 합격된 사람만이 ‘작가’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글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나를 모르는 사람들밖에 없으니 나를 세상으로 꺼내어 내가 느낀 감정과 삶을 표현하기에 어울리는 무대라고 생각했다.
큰 고민 없이 내 이야기를 담은 글을 작성했고, 신청했다. ‘불합격하면 어쩌지?’라는 불안 속에서 며칠을 보내고 나서야, 아무렇지 않게 합격 메일을 받았다. 일면식 없는 타인에게 나를 보여주는 일은 조금 부끄러웠지만, 그 작디작은 합격 통보는 내게 커다란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내 안의 잊고 있던 자신을, 다시 깨어나게 했다. 이제 나는 글로 나를 꺼내어 보여준다. 예전의 나는 상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이제 나는 글로 세상과 마주한다.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나의 생각을, 그리고 나를 적어낸다. 그렇게 나는 점차 세상과 가까워지고 있다. 그리하여 오늘도 나는, 나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