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다른 아이를 키우며 직업의 자리를 묻다
큰 아이는,
어떤 땐 귀가 잘 안 들리나,
어떤 땐 뭐가 잘 안 보이나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산만함이 있다.
블록놀이에 몰두해 있을 때면
엄마의 말은 닿지 않았다.
무엇을 가지러 갔다가 돌아오지 않아 보면
다른 물건을 만지며 놀고 있었다.
가지러 갔던 이유는 잊힌 지 오래였다.
그런 아이였다.
유치원에 다니던 일곱 살 무렵,
큰 아이는 종종 ‘핑크팀’으로 보내졌다고 했다.
선생님 말을 안 들어서
일종의 벌을 받았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아이 말에는
억울함이 섞여 있었다.
안 들은 것도 아닌데
보내질 때가 있다는 것이다.
핑크팀은
여자아이들만 앉는 자리,
여자아이들만 모여 있는 그룹이었다.
아마도 선생님 나름의 문제 해결이었을 것이다.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분위기를 휘몰아치는 아이를
야무진 여자아이들 사이에 두면
교실이 조금은 조용해질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때
유치원 특수학급에 있었다.
동료 교사들에게
조심스레 상의를 했다.
그들은 아이의 ‘별남’을
금세 알아차렸고,
유치원에 간식을 챙겨 보내고
선생님과 관계를
잘 유지하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그 조언에 수긍하면서도,
그 말을 듣는 순간
이 아이가 조정되어야 할 존재가 된 것 같아
마음 한켠이 조용히 무너지는 듯했다.
그 무렵,
다섯 살 작은 아이에게도
걱정되는 증상이 나타났다.
밤에 자다가 벌떡 일어나 울었고,
낮에는 소변을 조금씩 지렸다.
일부러 참다 그런 것도,
어디가 아파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몸이 먼저 반응하는 신호 같았다.
작은 아이는
유치원 적응이 힘들어 보였다.
아침이면 오빠가 여동생의 손을 잡고
교실 앞까지 데려다주었다고 했다.
이 아이 때문에
그 유치원에는 새로운 시간이 생겼다.
점심시간은
동생반 아이들이
형님반 교실로 놀러 가는 시간.
아이를 품기 위해
시간을 다시 짜는 곳이었다.
고마웠고,
그만큼
마음은 더 조심스러워졌다.
어느 여름날,
큰 아이가 더위를 먹은 적이 있었다.
무더위 속에서
얼마나 별나게 놀았을까.
그 생각이 앞서
선생님께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그런 날이 쌓였고,
그만큼
나의 밤은 더욱 어두워졌다.
아이들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면
문득문득 같은 생각에 닿곤 했다.
나는
이 아이들을 지키면서
이 자리에 남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