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를 붙들고 있다

버티는 일이 답이 아님을 알면서도

by 전이야

나는 한때 사격선수였다.


과녁 앞에서

숨을 고르고,

손의 떨림을 지우고,

반동을 삼키는 법을 익혔다.


사격이라 하면

사람들은 집중을 떠올리는데,

내가 아는 집중은

생각을 지우고

내가 정한 루틴을 묵묵히 해내는 거였다.


스물두 살에

허리 디스크가 왔고,

그즈음 IMF로

팀이 해체됐다.

재활 중인 선수를

받아줄 팀은 없다.


사격을 그만두는 일은

결심이라기보다

통보에 가까웠다.


그때 나는

이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운동밖에 모르던 내가

세상으로 나왔으니

선택지가 넓어졌다고 믿었다.


하지만

정작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실은

사격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그래서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대학에 들어가기까지

손목에 동그란 혹이 생겼다.

병원에서 물을 빼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또 부으면

다시 빼고

또 앉았다.


하루에 연습장을 몇 장 쓰는지,

한 달에 볼펜을 몇 자루나 닳게 만드는지

세어가며 공부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를 공부의 자리에

가둬 둘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자리에서

버티는 방법이었다.


특수교육이라는 전공을 선택했을 때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잘하던 일을 해봤고

그건 끝났고,

그렇다고

꼭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그래서

세상에 조금이라도

해가 되지 않는 일을 하자,

가능하다면

조금쯤은 기여하는 쪽으로 가보자,

그 정도의 이끌림이었다.


그리고

임용고시.

나는 이상하게

유명 강사의 강의가 맞지 않았다.

다들 좋다는데

내 귀에는 남의 말처럼 흘러갔다.


두려웠지만

강의를 듣지 않기로 했다.

책만 놓고

혼자 공부했다.


순수 공부 시간을 재며

공부했다.

얼마나 오래 앉아 있었는지가 아니라

정말 집중한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를 적었다.


결과는

전국 TO 열한 명,

경남 한 명.

그 한 명이 나였다.


나는

스스로 정한 자리는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었다.


교사가 된 뒤에도

나는 내 자리를 붙들었다.


매일 수업을 돌아보고
다음 수업을 준비했다.

그 시간들이

내 반아이들에게
남기를 바랐다.


그래서

교사는

내가 쉽게 내려놓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버틴다고 해서

아이들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 자리에 남겠다며

아이들에게

함께 버티자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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