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유치원

by 전이야

학교를 관두고 처음 한 일은
남편의 사업장 가까이로 이사를 가는 것이었다.


아빠의 출퇴근 시간을 줄여
아이들이 아빠를 조금이라도 더 오래 볼 수 있게
환경을 바꿔주고 싶었다.


엄마는 놀이터고
아빠는 놀이동산이라 했던가.


늘 바빠서 귀한 아빠,
아이들은 아빠와 함께 있을 때
유난히 행복해 보였다.


아이들의 유치원을 알아봤다.
점심 무렵이면 돌아올 수 있는 곳을 찾았다.


그간 유치원 생활이 원만치 않았던 큰 아이였기에
하루 종일 유치원에 있기보다는
오전 동안만
친구들과 놀다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곳은 없었다.


“만 5세면 학습 준비가 필요해요.”
“이 아이만 일찍 가면 분위기를 흐려요.”
질병같은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교육과정상 중도 귀가는 어렵습니다.”


마침 다섯 살 딸아이는
유치원에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친한 친구가 없어서도 아니고
유치원이 싫어서도 아니랜다.

"그냥 엄마랑 놀고 싶어."

그녀의 초이스라니, 무한한 영광이지.


어쩔 수 없다.

집에서 유치원을 열었다.


원장도 나였고,
교사도 나였고,
조리사도 나였다.
그리고 가장 많이 불려 다닌 사람도
나였다.


오전에는
미술 시간,
요리 시간,
체육 활동,
게임, 음악, 책 읽기.


오후에는
공원을 걷고
도서관에 가고
마트에 가고
온 동네 놀이터를 탐방했다.


엄마는 선생님 삼고
아들과 딸은 서로 동무 삼아
하루를 채웠다.


아이들과 할 수 있는 요리는
생각보다 많았다.

특별한 요리는 아니었다.
우리가 늘 먹는 반찬을
그냥 같이 만들었을 뿐이다.


그중에서도

국은 아이들과 만들기에

의외로 좋은 음식이었다.


콩나물국, 된장국, 계란국, 감잣국, 미역국...

재료를 신나게 탐색하고

냄비에 보글보글 끓이고

소금 간 간장 간을 맞추면 끝이었다.


실패해도

양념 더해서 다시 끓이면 됐고,

조금 짜도

물만 더 넣으면 그만이었다.


국을 끓일 때면

재료 꺼내기부터

하나의 놀이가 되었다.


콩나물, 감자, 두부, 계란...

아이들 손에 먼저 닿는 게 그날의 국이다.


야채는
플라스틱 칼로
싹둑싹둑.


두부는
만져보고,
짓이겨보고,
조심조심 썰어보기도 했다.


계란은 거의 탐구 대상이었다.
쥐어서 깨보고,
톡톡 두드려보고,
총총총 풀어보고.


가끔
계란 껍데기 한두 개쯤
입으로 들어갔지만,
아이들이 침 바른 손으로
재료들을 주물럭 거리기도 했지만

그럼 좀 어떠하랴
에라이 모른 척했다.


엄마잔소리도 중간 생략이 필요하니까.
교육엔 유연성이,

특히 엄마 선생님에겐 더욱더 필요하니까.


집은 늘 엉망이었다.


국 하나를 끓이고 나면
부엌은 전쟁터,
바닥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요리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자장은 단골 메뉴였고
카레와 볶음밥은
거의 고정 편성이었다.


유부초밥과 김밥은
각자 취향대로 만들다 보니
결과물은 늘
이게 뭐지?”였다.


나중에는
빵도 만들고
과자도 구웠다.


아이들은 자랐고

요리는 점점 복잡해졌으며

활동은 점점 다양해졌으니
집은 더욱이
초토화될 일이다


한동안은
그런 집안 꼴이
꽤 힘들었다.


중간중간 정리를 하자니
아이들의 흐름이 끊기고,
그냥 두자니
내가 먼저
지칠 것 같았다.


그래서 규칙을 하나 만들었다.


정리는 하루에 한 번.
저녁에.
제대로.


정리는
항상 마지막까지 남는 숙제였다.
특히 아들에게 그랬다.


물건은 쓰는 만큼 늘어났고,
공간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정리는 늘
마지막에,
가장 어려운 일로 남았다.


그래도
매일 했다.


정리.

분류하는 법,
범주를 만드는 법,
공간을 나누고

그 안에 배치하는 법.


너무 어질러진 모습을 보면
아이들도 먼저 지친다.


“언제 다 치워…”


그 말이 나오기 전에
나는 같이 치웠다.


자립심이니
스스로 책임이니
그런 큰 말 대신
매일 저녁,
정리를 한다는 규칙 하나만을
지켰다.


시간이 흘러
아이들에게 그 시절을 물으면
대답은 조금씩 다르다.


감성 풍부한 딸아이는
기억이 흐릿하지만
아련하고 행복했던 거 같다고 말한다.


무뚝뚝한 아들은
엄마 유치원에 다니느라
유치원 졸업사진이 없네라고만 한다.


그래도 괜찮다.


기억도 흐릿하고

졸업사진도 없지만
이야깃거리는 많았고,

추억은 쌓였다.


나와 함께 요리를 하던 아들은
지금은
나보다 요리를 더 잘한다.


내 율동을 따라 하던 딸아이는
지금은
누구보다 춤을 잘 춘다.


아이들은

그 시절을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몸은 기억하는 것 같다.


국 냄새가 나면 모여들고,
리듬이 들리면
저절로 몸이 들썩이고,
뭔가를 쏟아도
크게 당황하지 않고 척척 치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유치원이었을지도 모르고
아닐지도 모른다.


매일 웃고
매일 만들고
매일 어질렀다가

다시 정리하던 시간.


그렇게
우리 집은 매일
유치원이 되었다가
저녁이면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좋은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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