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환자 그리고 엄마는 공범

by 전이야

내 아들의 별명은 쿠크다스다.
그 과자처럼 잘 부서져서...

초등학교 때부터 아들은 정말 자주 다쳤다.

운동틱 때문인지, 관절이 약해서인지, 덤벙거림 때문인지
또는 그 모든 것들이 엉켜서인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발과 발목이 늘 위험지역이었다.


한동안은 허리와 목 디스크 때문에 병원을 다녔고,
발가락 연골 괴사로 오랫동안 깁스를 했었다.
발목뼈가 잘 붙지 않아
연이어 깁스를 했던 적도 있다.
그러니 아이의 친구들 입장에선
그가 깁스를 한 모습이
‘늘 보던 풍경’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들이 얌전하게 지낸 것도 아니다.
그런 발목과 허리와 목을 가지고도
운동을 해대는 아들은
결국 또 다쳤고,
그래서 또 깁스를 했다.

그리고 그 깁스를 하고 또 뛰었다.
그러니 다음 깁스는 시간문제였다.


그렇게 쌓인 시간 속에서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 바로 ‘쿠크다스’였나보다
나는 그걸 아들이 고등학생이 돼서야 알았다.

각자의 별명을 새겨 넣은 체육대회 단체복.

아들의 등 뒤에는… 그 이름, ‘쿠크다스’가 당당하게 박혀 있었다.



나는 그 글자를 보고 한참을 바라봤다.

순간적으로 웃음이 났지만

괜히 코끝이 찡했다.

우당탕거리던 아이의 시간들이

그 글자 안에 얌전하게 숨어 있었다.


그런데 이 아이의 진짜 전설은 그 뒤에 이어진다.

의사가 “3주 반깁스,안정 가료”라고 했던 날,
아이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엄마, 근데 나 다다음주에 농구대회 나가야 해.”

나는 꽥 소리를 질렀다.
“니가 국가대표야? 니가 강백호야?”


그런데 이상한 건
그 말을 하고도 결국 내가 아이를
한의원에 데려가 침을 맞혔다는 것이다.
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회복이 빨리 되지 않을까,
그런 희망으로.


결국 아이는
3주짜리 깁스를 2주 만에 풀고
농구대회에 나갔다.

그리고 나는 그걸 말리지 않았다.
아니, 사실상 방관했다.
아이가 자꾸 다치더라도
‘이 다침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못하는 아이’가 되는 것이
나는 더 아렸다.


아이는 깁스를 풀자마자

농구도 하고, 회식도 하고

돌아왔다(지역예선에서 1위를 했단다).

남은 일주일은 더 볼만했다.

깁스는 그날 기분에 따라

‘오늘은 깁스룩, 내일은 정상룩’ 같은 느낌으로 다녔다.

나의 잔소리에 아이는

“아~ 괜찮아, 괜찮아~ 나 멀쩡해!”라며 너스레까지 떨었다.


웃긴 건 그 다음이다.

병원 가는 날이 되니

다시 조용히 환자 모드로 돌아왔다.

마치 며칠 동안
아주 조용한 요양원에서 지낸 사람처럼.

“엄마, 목발 어딨어?”

의사가 안정하라며 두 개나 건네준 그 목발.
평소엔 눈길도 안 주더니
병원 갈 때가 되니까
그제야 찾는 것이다.


나는 황당하면서도 웃음이 났다.

이럴 때 다시 깨닫는다.

그래... 얘는 정말 ‘나쁜 환자’고,
나는 그 아이의 공범이다.

그 사실이 얼마나 얄미운지
또 얼마나 미워할 수 없는지
그러면서도 묘하게 가슴을 건드리는지 모른다.

그래, 나는 이 나쁜 환자의 공범자다.
깁스를 빨리 푼다는 성화를 못이긴 것도,
대회 가도 모른 척해준 것도,
한의원까지 데려가는 것도

놀러다니는 걸 눈 감아준 것도,
모두 다 나였다.


엄마는 늘 옳을 수 없다.

이게 맞는 건지 틀린 건지 모르겠지만,

결국 나는

아이 옆에서 같이 가보는 엄마다.

사실 내 마음속엔
여러 감정이 뒤죽박죽 섞여 있다.

얘가 이러다가 정말 크게 다치면 어쩌나 하는 공포,
평생 골병이라도 나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
그럼에도 기어코 하고 싶은 건 다 했으면 좋겠다는 이상한 기대,
그리고 무엇보다
이 아이를 이겨먹는 엄마가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

그건 내가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고른 일은
웬만하면 스스로 감당해보게 하는 방식으로 키워와서다.

그게 내가 공범이 되는 방식이기도 하다.
아이의 선택엔 아이가 책임을 져야 하니까.

가끔은 그 책임이 정말 ‘뼈저리게’ 오는 날도 있다.

이번엔… 말 그대로 뼈에 와 닿아서 문제였지만.


아들의 삶은

부서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하지만 자기 방식대로 흘러간다.
그 옆에서 나는
웃다가 걱정했다가,
그러다 또 웃으면서
다음 병원 예약을 잡는 공범으로 살아간다.

그게 우리다.
지금 우리가 굴러가는 방식이다.
이게 맞는 건지 아닌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 굴러는 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똑같은 마음으로 말한다.


“그래… 어디까지 가나 보자, 나쁜 환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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