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남편이 한국뚜렛병협회 소식지 인터뷰 제안을 받았다.
‘투렛 아빠’로서 경험을 나누는 자리였다.
나는 조금은 흐뭇했다.
남편의 언어로 우리 아이를 말하는 순간이 올 줄 몰랐으니까.
그리고 속으로는
'드디어 당신도 뭔가 말하는구나...'
하는 은근한 기대도 있었다.
우리는 인터뷰 질문지를 함께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질문에서 예상하지 못한 균열이 생겼다.
'자녀의 진단 시기는 언제인가요?'
남편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2학년쯤 아니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 속에서 낯선 충격이 천천히 번져갔다.
우리 아이가 만성틱 진단을 받은 건 5살,
뚜렛증후군 진단은 4학년이었다.
둘 중 하나라도 비슷했다면
그렇게까지 마음이 흔들리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2학년'이라는 대답은
내가 울고 버티며 지나온 어느 계절과도
맞닿아 있지 않았다.
그 순간, 남편이 너무 멀게 느껴졌다.
한 집에서 같은 아이를 키워왔는데
그 중요한 문턱조차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참아내기 어려웠다.
그날 이후, 나는 오랫동안 남편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해할 수도 없었고, 용납할 수도 없었다.
심지어 이혼을 고민할 만큼 마음이 어려웠다.
내가 견뎌낸 시간들이
남편의 기억 속에서는
하나의 흐릿한 사건으로만 남아 있었다는 사실은
나를 깊이 흔들어 놓았다.
이 감정은 단숨에 사라지지 않았다.
누가 대신 설명해줄 수 있는 상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스스로 배워야 했다.
그 과정에서
남편을 향한 서운함도, 배신감도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때.
남편의 오답에
내가 정확한 진단 시기를 다시 말해주었던 그때.
남편은 울먹였었다.
“그때... 당신이 얼마나 힘들었는데...
내가 그걸 잊고 있었네...”
그 울음은 분명 진심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미안함의 눈물이 따뜻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건 남편의 마음 때문이 아니라,
이미 너무 멀리 와버린 내 슬픔 때문이었다.
나는 그 시절에 울 만큼 울어버렸다.
아이 앞에서는 울지 않았지만,
집이 잠잠해지는 밤마다
나는 혼자 울었다.
그 울음은
그 계절을 통과하기 위해
내가 매일 흘려야만 했던 숨 같은 것이었다.
그러니 남편이 이제 와서 운다 한들,
그 마음이 내 안으로 따뜻하게 들어오지 못한 것은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내 슬픔은 이미 오래전
나 혼자 견디며 지나온 것이었으니까.
내게 남편의 눈물은
내 시간이 끝난 뒤에 한참 늦게 도착한 감정이었다.
늦은 감정은 종종 따뜻하지 않다.
그것이 내 외로움을 되돌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스로 감정을 들여다보며
나는 남편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그 시절을 흐릿하게 기억하는 것은
‘무심함’이 아니라
그가 감당할 수 있는 방식으로 버텼기 때문이라는 것을.
사람마다 위기 앞에서
감정을 바로 들여다보는 사람과
감정을 나중에서야 경험하는 사람이 있다.
남편은 후자였다.
그에게는 감정이 천천히 도착했고,
늦게서야 그때의 고통이 마음에 닿았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나는 비로소 더 큰 사실을 이해했다.
많은 아빠들은 중요한 순간을 ‘잊음’으로 견딘다.
그건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감정이 벅찼던 순간을
제대로 저장하지 못한 채
‘일단 지나가게 두는 방식’으로 버틴 것이다.
엄마는 그 순간을 온몸으로 겪고
기억 깊숙이 새겨 넣지만,
아빠는 종종 그 순간을 ‘감정’이 아니라
‘해결해야 할 문제’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장면은 희미해지고, 감정은 저장되지 않는다.
결국 중요한 순간들이 기억의 뒤편으로 밀려난다.
나는 어느 순간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상처도 진짜였고,
남편의 상처도 진짜였다.
단지 그에게는 감정이 늦게 도착했을 뿐이다.”
우리는 같은 아이를 키웠지만
서로 다른 시간대를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엄마는 즉시 무너지고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고,
아빠는 감정이 천천히 도착하되 멈춤없이 걸어가는 사람이다.
이 차이는
사랑의 크기가 아니라
감정을 저장하는 방식과 속도의 차이였다.
이해는 상처를 지우지는 못한다.
하지만 상처가 더 깊어지지 않도록
그 주변을 천천히 감싸주는 힘이 있다.
나는 이제 안다.
우리가 같은 순간을 다르게 기억해도,
각자 다른 계절을 지나왔어도,
그 차이가 반드시 틈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사람은 각자 견딜 수 있는 방식으로
아픔을 받아들이고,
각자 다른 속도로 마음에 부딪힌다.
이제는
내가 먼저 울었던 그 계절을 기억하고,
남편의 눈물이 늦게 도착한 그 계절도
함께 기억하려 한다.
그것이 우리가
조금씩 다시 걸어가는 방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