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나는 학교 도서관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면,
‘아이들 곁에 있고 싶다’는 마음이 반,
‘선생님께 얼마나 혼나고 있나?’
슬쩍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반이었다.
도서관 책장 사이에서
우물쭈물 거리는 큰 아이와
수줍게 웃던 작은 아이를 마주치는 일.
그건 매번 나에게 주어지는
작고 은근한 보너스였다.
그 무렵, 큰아이는
투렛증후군으로 많이 힘들어하고 있었다.
틱이 심해지면 교실에서 조용히 앉아 있는 것조차 버거워 보였고,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도서관에 오래 머물렀다.
누가 보면 ‘교육열 높은 엄마’였겠지만,
사실 나는 조용히 아이를 둘러보는 엄마 CCTV였다.
함께 봉사하던 한 어머님은 발달장애 아들을 키우고 있었다.
우리는 늘 비슷한 걱정을 나눴다.
“오늘도 선생님 눈에 너무 띄지 않았을까요?”
“친구들이랑 잘 지내는 것 같던데...괜찮겠죠?”
“왜 숙제는 늘 엄마 숙제 같은 걸까요?”
도서관은 조용했지만, 우리 둘 사이에는
짧은 한숨과 작은 웃음이 오가는 ‘숨구멍 같은 대화’가 있었다.
다이어트 실패담으로 피식 웃기도 하고,
아이 이야기로 고개를 끄덕이며 위로받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를 키우는 어려움을 이야기하던 중 그 어머님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발달장애 아이들은 정말 도움이 필요해요.
근데, 투렛 같은 애들은 사실 필요 없지 싶어요.
지원은 우리 같은 아이들 쪽에 다 몰아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린 진짜 죽고 사는 문제니까요.”
말투는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그 말이 어디를 향하는지는 단박에 느껴졌다.
“네 아이 얘기는 아니야”라는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그 말은 정확히 내 가슴 한가운데 놓였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모르는 사람이 던졌다면 그냥 스쳐갔을 말이
아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니 더 깊게 박혔다.
"우리 아이의 고통은, 지원을 받을 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구나.’
그 생각이 조용히, 그러나 긁고 지나갔다.
그 어머님과 나는
비슷한 약을 아이들에게 먹이고 있었고,
비슷한 부작용을 걱정하며 살았다.
아픔의 무게는 달랐지만, 그 둘은 모두 진짜였다.
나는 한마디도 보태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했다.
고통을 줄 세우는 대화는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그리고 혹시나
내 말 한 조각이 그녀를 더 다치게 할까 봐,
입 안에 맴돌던 문장들을
그저 조용히 삼켜 넣었다.
그리하여, 몇 시간처럼 길게 느껴지던 몇 초를
말없이 흘려보냈다.
나보다 더 아픈 사람 앞에서
나도 좀 아프다 말하는 건,
어쩌면 죄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아이들의 고통을 가볍다 단정하거나,
그저 스스로 감당해야 할 일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의 아픔은 비교의 대상이 아니다.
호호 불어줄 아이도 있고,
밴드를 붙여줄 아이도 있고,
병원에 가야 할 아이도 있다.
이 아이들 모두 돌봄을 받아야 한다.
모든 아픔은
따뜻한 돌봄을 받아야 할 마땅한 이유라고,
나는 믿는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해야 할 말이 마음 속에서 천천히 익는다.
그날 꺼내지 못하고 삼킨 말들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문득,
‘그땐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하며
천천히 마음 속으로 되돌아오곤 했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그때의 그녀에게 다정하게 말해주고 싶다.
이제는 다정하게 말할 수 있다.
“네. 이해해요.
저는 발달장애 아이들의 삶 속에서,
저마다의 필요만큼 살뜰히 지원받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어요.
그리고 투렛처럼 어려운 때를 지나는 아이들에게도
넘어졌을 때 살짝 호호 불어줄 수 있는
그런 작은 손길 하나쯤은 허락되었으면 해요.”
돌이켜보면 그 순간 나는
내 마음을 앞세우면 다정하게 말하지 못하고,
다정함을 앞세우면 정작 내 마음을 전하지 못할까 봐
그 말을 조용히 삼켜버렸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다짐한다.
조금 더 오래 듣고, 조금 더 깊이 보고,
조금 더 넉넉한 마음으로 사람을 바라보자고.
말은 생각보다 쉽게 튀어나오지만,
다정하지 않다면 삼키는 것이 더 낫다는 걸
그날 나는 배웠다.
그래서 지금도 순간 치고 오르는 말이 있을 때면
잠시 숨을 고르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말이 누군가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가.”
그렇다면 나는 그 말을 살며시 안으로 되돌려 보낸다.
그리고 대신, 조금 더 다정한 문장을 골라본다.
언젠가 그 문장들이
누군가의 마음을 건너는
작은 다리가 되어주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