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by B급선배

#1

충무로역 근처 구석진 곳에 위치한 고깃집에 왔다. 오늘 자리의 주인은 자신의 음료로 대통주를 주문했고 나에게는 내 취향에 맞는 것을 편하게 주문하도록 허락했다. 각자 취향껏 취하자며. 노르스름한 조명 아래, 그리고 기름때가 잔뜩 낀 식당 바닥 위에 놓인 드럼통에 숯불이 채워졌다. 싸구려 냉동고기가 불판에 올라 익어가며 알 수 없는 불순물과 분리될 때까지 우리는 특별한 말을 나누지 않았다. 서로에 대한 흥미 때문에 저녁 식사자리까지는 몰아치듯 와 앉았는데 평범한 대화는 모두가 서툴렀던 것이다. 각자 취향에 맞게 주문한 음료를 서로에게 권하면서 겨우 정적이 깨졌다.


"그날 발표 굉장히 인상적이었어. 한 잔 받아."

"감사합니다."


발표에 대한 칭찬에 한해서 감사했다. 대통주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대통주를 어떤 방식으로 제조하는지를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교수님의 술잔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대신 한 번에 들이켜고 달아서 못 쓰겠다며 역시 제 취향에 맞는 소주를 마시겠다고 했다.


"그리고 오늘 자리도 놀랐어. 실은 정말로 연락할 줄은 몰랐거든. 보통 술 사달라고 조르기는 하는데 막상 사준다고 하면 다들 빼더라고."


#2

수업 중간 쉬는 시간에 시작한 대화는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었다. 손목시계를 확인하고 교수님은 다음번에 술 한 잔 하면서 다시 이야기하자고 서둘러 대화를 마쳤다. 난 그 말을 허투루 듣지 않았을 뿐이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어느 날 교수님께 메세지를 남겼다. 언제 시간이 되시느냐고. 교수님의 답장은 메세지였는지 전화통화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충무로역 근처에서 보자는 대답만은 분명히 기억했다. 오늘이 그날이었다. 그러나 약속한 장소와 날짜와 시간을 잊지 않겠다는 핑계로 정작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고민하지 못했다. 충무로역으로 가는 길이 가까워지면서 '윗사람과 대화하는 법' 따위를 검색하고 있었다. 쓸모 있는 지식은 찾질 못했다. 곧 충무로역에 도착했다.


서로의 술잔이 몇 차례 채워지고 비워졌다. 여닫이 창을 활짝 열어젖혔지만 가게 안 열기는 빠져나가지 않았다. 주변 다른 드럼통을 점유하는 취객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소리가 화이트노이즈처럼 우리를 가둔다. 소란스러운 가운데 차분하다.

"자네는 왜 배우가 되고 싶은 거야?"

"한 번... 밖에는 살지 못하잖아요. 지금 제 모습이 마음에 들지도 않고, 나중에 평범한 직장인이 되더라도, 그렇게 뻔하게 살고 싶지는 않아서요. 배우가 되면 다양한 삶을 살 수 있잖아요."


젖혀진 창밖으로 한 무리의 취객이 지나갔다. 우리도 모르는 새에 소나기가 내렸는지 길바닥은 젖어있었다. 셔츠를 입고 헐렁한 타이를 목에 걸친 채로 비틀거리는 남자들. 평범해 보인다. 그러나 저들처럼 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충무로 근처에 어떤 회사가 있었더라.....


"조금 늦었지만 한 잔 더 하고 갈래? 야경 죽이는 곳 있는데."


난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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