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

by B급선배

얼큰하게 취한 우리는 3-40년은 족히 됨직한 건물 앞에 섰다. 주상복합 아파트라고 하는데 내가 알고 있는 주상복합 건물과는 인상이 사뭇 달랐다. 교수님은 이곳에서 산다고 했다. 건물 내부 천장의 조명은 전원이 내려간 상태인지 아니면 고장이 난 건지 우리의 움직임에 반응하지 않았다. 어두침침한 조도와 복도 바닥의 돌멩이 질감이 내 어릴 적 다니던 학교 건물과 비슷했다. 몇 계단을 밟고, 엘리베이터도 타고 하면서 나는 도착했다. 고시원 입구에.


교수님은 고시원 총무로 추정되는 이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나에 대한 소개 비슷한 것을 그에게 해주었다. 총무로 추정되는 남자는 방에서 시끄럽게 하지만 말라고 했다. 우리는 조용히 작은방 문을 열었다.


"자, 어떠냐? 나름대로 창문 있는 방이다. 창문이 난 방은 딴 방보다 3만 원이나 더 비싸."


창문도 이 건물과 닮았다. 주상복합 같지 않은 주상복합, 창 같지도 않은 창. 보통 창이라는 것을 통해 바깥세상을 살필 수가 있었지만 이 작은 방에 난 작은 창은 문을 활짝 열어도(활짝 열리지도 않는다) 시멘트 벽만 비출 뿐이다. 안팎의 공기가 드나들지도 않아서 난 마치 이곳에 갇힌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살짝 볕도 든다고, 방을 둘러보는 내게 교수님이 말했다.


"저는 교수님 정도 되시면 조금 더 좋은 곳에서 살거라 생각했어요."


난 교수님의 혼인여부를 듣지 못했지만, 이곳은 그가 배우자와 별거 중이거나 또는 출퇴근 효율 때문에 부득이하게 선택한 임시 거주처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작은방을 내 키만 한 침대가 가득 채웠고 방문은 침대 끄트머리를 스칠 듯 겨우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침대에 걸터앉으면서 그는 말했다.


“나 교수 아니래도. 강사야, 강사.”


어쩐지 처음 듣는 말 같았지만 교수님은 여러 번 이야기한 모양이다. 아마 내가 흘려 들었거나 술김에 듣고 잊었을지 모르겠다. 언젠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봤던 논쟁이 떠올랐다. 어떤 대학에서 발생한 일이다. 수업 중에 일부 학생들이 그들의 교수자가 전임교수인지 비전임교수인지를 확인했다. 학생들은 정규 임용된 교수에게는 ’교수님’이라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강사님‘이라고 불렀다. 그런 행위가 옳은지에 대한 논쟁이었다. 나에게는 교수의 계약형태는 썩 중요하지 않았다. 어떤 가르침을 주는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는지가 더 중요했다. 그리고 그런 서열화에 대해서도 반발심이 일었다. 누군가 나를 내가 가진 사회적 지위나 고용의 형태로 판단하고 호칭한다면, 난 조금 슬플 것 같다.


“아, 네. 그래도 그냥 교수님이라고 할게요. 저한텐 교수님이에요.”

“민망하다, 야. 그럼 그냥 쌤이라고 해. 선생님.”

"그건 노력해 보겠습니다."


옆 방에서 헛기침 소리가 났다. 교수님은 나가서 이야기하자며 눈짓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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