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 드라마

by B급선배

그때의 나는 근사함 보다 허술한 것에 낭만을 느꼈다. 예를 들면 편의점 앞 노상에서 캔맥주를 마신다든가, 상호명이 헐어진 간판의 식당을 간다든지 하는 일들 말이다. 그런 내게 건물 옥상에서 밤공기를 맡으며 남자 셋이 둘러앉아 함께 취해가는 시간은 더없이 즐거운 일이었다. 시간과 장소 모두가 참으로 청춘 같았다. 우린 그곳에서 서로의 꿈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조그마한 의자에 앉아서 꿈을 나눴다.


꿈이 달랐고 나이가 달랐고 상황이 달랐지만 쉽게 어우러질 수 있었다. 그것은 아마 우리의 비슷한 처지 덕분이었을 것이다. 당시에 “꿈은 높고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우리의 현실은 시궁창은 아니었으나 꿈과 괴리된 현실을 살고 있는 점은 분명했으므로 동병상련의 정이 통했던 것이다. 각자 필요한 위로와 격려의 말을 타인의 입을 통해 듣고 있었다.


교수님의 전공은 사실 사진이라고 했다. 정지된 사진과 움직이는 영상은 엄연히 다르지만 비슷한 구석도 있었다. 사진에서 시작된 그의 관심이 영상과 영화로 이어졌고 지금은 학생을 대상으로 영화 교양수업을 가르치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본업이 따로 있었고 전임교원은 아니었기 때문에 교수님이라 불리는 것을 부담스럽게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꿈과 현실에 대한 짧은 소개 이후 교수님은 다시금 내게 왜 배우가 되고 싶은지를 물었다. 난 지난번 학교에서 답한 내용을 반복했다. 이번엔 시간이 넉넉해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대답했다.


“예전에 <파이란>이란 영화를 본 적이 있어요. 최민식이 정말 생양아치로 나오는 영화인데, 건달 양아치 연기를 참 맛깔나게 잘하더라고요. 어떻게 저런 연기를 할까, 과거에 진짜 건달 쓰레기는 아니었을까 의심하면서 봤어요. 영화 종반부에-영화를 보셨는지는 모르겠지만-최민식이 오열하는 장면이 있거든요. 그 장면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무슨 생각?” 교수님이 물었다.


“나도 ‘저거’ 하고 싶다는 생각이요.”


<파이란>에서 최민식은 건달을 연기하는 배우가 아니라, 진짜 삼류건달 그 자체였다. 그러나 자신을 사랑한 존재의 흔적을 깨닫고 뒤늦은 후회와 고통을 겪어내는 가여운 인간이기도 했다. 난 좋아하는 영화는 몇 번이고 다시 보는 편이지만 <파이란>은 잘 보지 못한다. 최민식과 장백지의 생이 몹시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도 여운이 계속 남았어요. 그런데 그렇게 애절한 남자가 <올드보이>에서는 망치로 이빨 뽑으면서 복수를 하더라고요. <주먹이 운다>에서는 돈 받고 길바닥에서 쥐어 터지질 않나.”


교수님과 총무 형은 술잔을 비우며 잠자코 듣고 있었다.


“건달이 멋있게 보였다는 말은 아니에요. 저렇게도 한 번 살아보고 싶고, 다른 삶도 한 번 살아보고 싶었다는 거지.”


총무 형은 영화를 보지 않은 듯했다. 그는 최민식이 누구 업고 있는 영화 말하는 거지? 라며 영화의 포스터 이야기만을 했다. 하긴 작품성에 비해 흥행에는 실패한 영화로 유명했으니까 충분히 모를만한 일이다. 교수님은 다행히 영화를 본 모양이다. 좋은 영화라고 인정을 했으니까. 영화나 책, 음악 취향이 같은 사람을 만나면 반가운 기분이 든다. 난 그들의 빈 술잔을 다시 채웠다.


“지금 연기해 볼래?” 술잔을 들이켜고 교수님이 말했다.


나는 지금 여기서 무슨 연기를 어떻게 하란 말인지 되물었다. 연기를 배운 적도 없었다. 그러나 교수님은 대뜸 자신이 나의 아버지 역할을 할 테니 나에게는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아들 역할을 해보라고 주문했다. 술이 깼다.


“아니, 대본 같은 것도 없는데 제가 뭘 어떻게…”


“즉흥연기로 하는 거지. 너 배우가 되고 싶다는 녀석이 이래서야 쓰겠냐.”

“그래 나중에 오디션 보려면 감독이 울라면 울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연기하고 그래야 하지 않나?” 옆에서 총무 형이 싱글싱글 웃으며 교수님을 거들고 있었다.


난 그들이 참 고약한 술버릇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교수님은 대뜸 아버지의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실제 내 아버지와는 매우 다른 말투로 말하고 있었다.


“너 요즘 뭐 하고 다니는 거냐, 취업은 준비하고 있냐, 허구한 날 술에 취해 들어오질 않나-”


난 민망하고 부끄러워서 도무지 대꾸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연기는 상대방이 하고 있는데 민망함은 내 몫이었다.


“잠시만요. 교수님. 제 아버지랑 너무 달라서 집중을 전혀 못하겠어요. 그리고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어요.”


“그럼 네가 아버지 역할을 해. 내가 네 역할을 할게.”


희한하게도 두 번째 제안은 받아들일만했다. 협상의 기술 같은 것이었나 보다.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란 말은 이런 상황을 뜻하는 말인가? 왜 따라야 하는지 몰랐지만 엉겁결에 난 나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래서 교수님보다는 조금 더 자연스러운 도입부로 ‘나’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그것은 쉬운 일이었다. 나의 아버지는 다정한 말은 못 하는 편이었고 나에게 불만이 많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교수님은 실제의 내 모습과 같다고 할 수는 없어도 그럭저럭 버르장머리 없는 태도로 ’아버지’에게 대들기 시작했다. 즉흥적인 대사를 계속 주고받으면서 쑥스럽고 민망한 감정은 사라져 갔다. 몰입의 순간이라 표현하면 과할지 모르지만 되지도 않는 연기를 하는 동안 분명히 다른 생각은 나지 않았다. 교수님은 아버지인 내 말에 퉁명스럽게 반응하고 제 인생에 참견하지 말라는 둥, 관심을 끄라는 둥 부끄러운 기색 하나 없이 신나게 연기하고 있었다. 난 그의 주사가 참으로 별나다고 생각했다.


교수님은, 아니 ‘나’는 점점 엇나가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처음과 다르게 ‘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말은 아들에게 잘못 전달된다. 아버지 역할의 나는 다정한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역시 따뜻한 말을 못 한다. 애는 타고 말은 계속 헛나왔고 어긋나는 대화를 바로 잡으려는 노력은 꾸준히 실패했다. ‘나’는 그보다 더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반발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나’의 태도에 때론 화를 내지만 오해를 풀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언성이 높아져서 미안하다, 하지만 너의 태도는 옳지 않아, 생활이 녹록지 않아서 너에게 소홀했던 것이 미안하다. 그리고 나도 몰랐을 뿐이다. 나도 내 아버지로부터 따뜻한 말을 못 들어봐서 네게 다정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고백할 때, 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것은 몰입이었을까? 서럽게도 울었던 것 같다. 안쓰러운 감정도 들었던 것 같다. 어깨가 들썩거릴 정도로 운 것을 기억한다. 감정이 잡히고 이성이 돌아오면서 나는 의아했다. 왜 울었지? 내 주사도 이 사람이랑 비슷했나 봐. 울고 있던 사람은 아들이었을까 아버지였을까.

‘나’는 조용히 내게로 와 날 안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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