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발 인천행 비행기는 서른번째 나의 생일날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입국장으로 가니 유럽과는 다르게 심각한 분위기가 엄습한다. 입국 심사서에 적혀진 코로나 증상이 나열되어 있다. 모로코에 있었을 때부터 목이 아팠고 열이 살짝 났는데 진단 문서에 해당사항을 체크했다. 그러더니 검사하시는 분이 잠시 옆쪽으로 빠지라고 한다. 빠진 곳에는 몇몇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공항 검역관은 나를 포함한 빠진 몇 명을 어디론가 데리고 간다. -짐은 어떻게 됩니까? -걱정 마세요. 저희가 챙겨드립니다. 검역 대기소에 왔다. 방들이 있는데 남녀를 분리시켜 격리한다. 나보다 6살 정도 많아보이시는 분과 같이 있었다. 그 분은 대구에서 오셨다. 마치 교도소 동기처럼 각자의 사정을 얘기했다. 시간이 잘 가는데 한 명 더 들어온다. 이탈리아에서 오신 분이다. 또 그렇게 셋이서 수다를 떨었다.
2시가 되었다. 기다리다 지쳐 대구 형님께 전화를 빌려 부모님께 전화했다.(내 휴대폰은 러시아에서 분실되어 현지에서 임시로 산 폰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화와 인터넷이 안된다.) 엄마가 많이 놀라신다. 안부를 물을 때 검역관이 우리를 데리러 온다. 짐들을 챙기고 밖으로 나오라고 한다. 밥은 준다고 하더니 아직도 주질 않는다. -밥은 언제 주나요? -가서 줍니다. 차에 올라타세요.
또 다른 격리소로 오더니 사람들을 호명한다. 그리고는 방안으로 한 명씩 안내한다. 원룸 정도의 크기 방. 비닐로 싸여있는 침대, 꽤 좋은 스마트 tv, 옷장까지 있다. 내가 살던 고시텔보다 더 좋다.
화장실에 들어갔다. 여기도 크고 좋다. 물을 트니 따뜻한 물이 세게 나온다. 올 때 나눠준 짐들을 풀고 이틀 동안 찌든 몸을 일단 씻었다. 살 것 같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그때 전화가 온다. -검역관입니다. 조금 있다가 밥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작은 플라스틱 실린더 드릴 테니 거기에 침 계속 뱉으세요. 4시쯤에 밥과 플라스틱 실린더가 왔다. 방역복을 입은 사람이 가지고 방문 앞에 놔두고 간다. 한솥도시락이다. 돈가스랑 각종 튀김이 있었다. 하나를 빨리 해치웠다. 두 개 갖다주지... . 휴대폰은 러시아 폰이라 전화든 인터넷이든 되는 게 하나도 없다. 부모님한테 잘 있다고 다시 전화해야 되는데 걱정이다. 그냥 tv만 봤다. 그리고 다시 잠들었다.
저녁 8시. 방안의 내선전화가 울린다. 저녁 가져다 뒀다고 한다. 또 한솥도시락이다. 아까처럼 맛있게 먹어지만 마치 올드보이에서 나오는 군만두 느낌이었다. 저녁을 먹고 양치질을 하고 또 tv를 보고 잤다. 그때가 새벽 2시였다.
30살의 내 생일은 그렇게 끝났다.
격리 시설에서 먹은 도시락
2020/03/14 '따르릉' 아침에 내선전화가 나를 깨운다. 검역관이 곧 가서 검사를 할 것이라고 한다. 30분이 채 안돼서 방역복을 입으신 분이 들어온다. 코에 긴 면봉을 쑤셔 넣고 어제 침을 모아놓은 플라스틱 병을 가져간다. 검사가 끝나는 대로 보내 준다고 한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 밥이 왔다. 딸기가 있는 샌드위치에 우유를 줬다. 나름 괜찮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문을 열어봤다. 이중으로 문이 되어있는데 방문은 열렸지만 바깥문은 잠겨있다. 잠금장치가 밖에서 되어 있다. 여기 감옥 맞다.
어제 부탁했던 와이파이가 왔고 카톡을 하려는데 인증이 되지 않아서 한국 계정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다 포기하고 다시 자버렸다.
얼마나 잠을 잤을까, 내선전화가 또 울려서 받았다. -조재현 님 '음성'으로 나왔습니다. 짐 챙기고 부르면 나오세요. 30분 정도 있다가 나왔다. 어제 도와주신 대구 형님도 나오셔서 기다리신다. 음성이라 다행이었다.
검사지. 다행히 음성이었다.
나온 사람들 몇 명이서 카니발 차에 타서는 인천공항버스대기소로 바래다준다. 염치없지만 전화를 또 빌려서 부모님께 무사한 것을 전했다. 대구 형님께 진심으로 감사했다. 대구 형님과 작별인사를 하고 자취방에 돌아가기 위해 성남행 버스를 탔다. 돌아가는 길에 여행에 대해 생각해 봤다. 가슴 어딘가가 착잡하면서 허무하고 무기력해졌다. 지금이 정말로 여행이 마무리된 느낌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