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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재현 Dec 29. 2021

오사카로 떠나는 배

첫 번째 기록

2018/01/21

다음 주에 가려는 일본 여행을 일주일 당겼다. 일이 너무 하기 싫었다. 추운 날 밖에서 막노동을 하니깐 죽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추운 날에 무슨 일이냐! 추울 땐 놀아야지!'

그 생각으로 오늘 일본으로의 출발을 결정했다.

아! 이번 일본 여행은 비행기가 아닌 배로 갈 것이다. '크~ 낭만적이다.' 가격도 편도 4만원이었다.

부산발 오사카행 페리 티켓

고향인 김천에서 전날 묵었다. 아버지와 엄마가 ktx역까지 바래다줬다. 가는 차 안에서 학교 복학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작년 27살에 전역을 했다. 늦게 복학을 해서 부모님이 걱정이 많았다.) 넌지시 국문과로 과를 바꾸겠다는 말을 던졌다. 부모님이 잠깐 노발대발하신다. 역시나 과는 몰래 바꿔야겠다. (성적에 맞춰 대학교를 생명과학과를 갔다. 하지만 인문학을 좋아하는 나와는 맞지 않는다.) 그러던 중 역에 도착했다. 잔소리가 듣기 싫어 부랴부랴 차에 내렸다. ktx는 부산으로 향해 달렸다.


ktx 티켓

약 2시간 후 도착한 부산은 겨울이 아닌 것 같다. 햇볕이 뜨겁다. 편의점에서 마실 것을 사고 휴대폰의 지도를 봤다. 15분 남짓 걸리지 않는 항구로 가는 길이지만 너무나 더웠다. 땀이 줄줄 새듯 나길래 입었던 히트텍을 그 자리에서 벗어던지고 싶었.

부산역

신식의 건물로 된 부산항 안으로 들어왔다. 사람들로 붐빈다. 우선 화장실로 향했다. 양변기 칸으로 들어가 히트텍을 벗었다. 살 것 같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오사카가 목적지이니 그곳으로 가는 배의 창구를 찾아 출국 수속을 밟았.


부산항 창구


항구에서 배로 연결된 길은 상당히 길었다. 하지만 캐리어를 끌고 가며 지루함보단 일본에서 두 달간 산다는 설렘이 앞섰다. 배의 입구에 들어섰다. 배가 크다. 예전 고등학생 때 수학여행으로 일본을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이 배를 탔는데 9년 만에 다시 타보게 된다. 배는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예전보다 시설도 훨씬 좋아졌고, 와이파이존도 있다. 편의시설로 카페와 사우나가 있다. 조금 있다 사용해야겠다. 방은 4인실인데, 나랑 아저씨 한 분만 사용하게 되었다. 개꿀이다. 짐 정리를 하고 있으니 방송이 들린다. 출항시간과 저녁시간 등 여러 가지를 안내했다. 밤에는 지루하지 않게 공연도 한다고 한다.

통로에서 바라본 팬스타드림호

카페에 가보았다. 이미 자리가 꽉 찼고, 단체관광을 오신 어르신들이 술을 까고 계신다. 아직 배가 출발 전인데도 말이다.

멀어지는 부산항

배가 출발한다. 갑판에 나와 멀어지는 부산을 바라봤다. 좋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커지는 뱃고동 소리와 부산 앞바다는 잘 어울리는 듯하다.

부산앞바다


배가 항구에서 점점 더 멀어지면서 바닷바람은 더 거세진다. 카페로 다시 들어와서 맥주를 주문했다. 카드로 결제하는데 육지에서 멀어져서인가 인식이 더뎠다. 다행히 결제는 됐다. 300ml의 글라스에 담긴 거품이 살짝 낀 맥주를 마시며 여행분위기에 젖어들었다. 술을 좋아하진 않지만 일부러라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배에서 바라본 부산항

맥주를 마시고 방으로 들어와 계속 잤다. 옆에 아저씨도 신나게 주무신다.

배가 출발한다.

6시가 되니 저녁식사가 시작됐다. 뷔페가 준비되어 있다. 맛도 괜찮다. 특히 김밥이 맛있었다. 4년 전 중국으로 배를 타고 간 적이 있는데 거기 밥은 정말 별로였다. 혼밥을 하려 하고 했지만 테이블이 많지 않았다. 모녀로 추정되는 두 명이 앉은 테이블에 앉았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밥을 먹었다. 옆에 앉은 김에  얘기를 걸었다. 패키지로 4박 5일 여행을 한단다. 나의 수학여행했던 그 여행 패키지와 똑같은 것이었다. 얘기하다 보니 말이 잘 통했다. 공연 때 같이 보자고 약속했다.

저기 테이블에서 식사도 하고 공연관람도 했다.

공연은 저녁을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작이 됐다. 마술공연이 공연의 스타트를 끊었다. 생각보다 허술했다. 마술사가 숨기는 것들이 옆에서 보니 다 보인다. 좀만 더 신경 써주지... 사회자가 나와 인사하고 팬스타로 삼행시를 잘 짓는 사람에게 선물을 준다고 한다. 아무도 신청을 안해서 지목을 하려는데 나와 눈이 마주쳤다.

'제발 오지 마라!'

하지만 사회자는 내 곁으로 왔다. 나에게 삼행시를 시켰다. 기억은 잘 안 났지만 용두사미로 끝난 삼행시였다. 어쨌든 카페에 맥주 무료권을 받았다. 나이스다.

공연은 재밌었다.

공연은 참여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배에 탄 사람들이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면서 끝났다. 알차게 준비한 게 재밌었다.

댄스대회함.

공연이 끝나고 모녀 분과 같이 카페에서 맥주를 마셨다. 딸은 93년생이고 경북대를 다닌다고 한다. 4살 위인 남자 친구랑 1년 사귀는데 이제는 지쳤다고 한다. 지금 공무원을 준비 중이어서  힘들다고 남자 친구에게 하소연하면 받아주지는 못할 망정 혼내기 바쁘다고 한다. 그리고 여자 친구에게 나이가 어리다며 엄청 가르쳐 들려고 한다고 한다. 왜 여자분이 지쳤는지 이해가 갔다. 그렇게 어머니 되시는 분과 딸의 남친 뒷담을 12시까지 들어줬다. 재밌었다.


방으로 들어가기 전  안내데스크로 갔다. 승무원에게 도착시간을 물어보니 내일 10시쯤라고 한다. 19시간 정도 걸리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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