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플로나의 2nd Day

잠시 쉬어가자.

by 조재현

2020/01/23
다리가 아프다. 그리고 몸은 피곤하다. 하지만 3시간만 자고 일어나버렸다. 도저히 잠이 오질 않아 호스텔 거실로 나왔다. 첫날에 동행한 어머님이 주신 한국 카레에 밥을 비벼 먹었다. 남은 김치와 먹었는데 살 것 같다. 글과 사진 작업을 하고 있으니 일행들이 내려왔다. 같이 무료 조식을 먹었다.

팜플로나에서 묵었던 호스텔. 너무 좋은 곳이었는데 사진이 없다ㅠ


팜플로나에서의 이틀째. 여유가 생긴다. 보르도 데카트론에서 산 등산바지가 기장이 많이 길었다. 수선을 하고 팜플로나의 데카트론 가서 크록스와 스포츠 타월을 사야겠다. 오늘은 나의 동행인 유하 씨가 같이 가주기로 했다

비오는 팜플로나

숙소 근처의 수선집을 발견했다. 옷을 맡기려 하는데 3일 있다가 찾아오라고 말한다. 내일 떠나야 하는데 어떻게 그때까지 기다리겠는가? 맡기지 않고 나왔다. 이대로 그냥 계속 입어야겠다. 데카트론은 도시 외곽에 있었다. 버스를 탔다. 나올 때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이제는 거세게 몰아친다. 괜히 나온 건가?


창고형으로 된 데카트론은 엄청났다. 없는 게 없었지만 크록스만은 없었다. 신기하다. 대체할 만한 것을 다행히 찾았다. 스포츠 타월도 습식을 사고 싶었지만 아쉽게 건식으로 샀다. 시내로 돌아오는 길에 아시안마트도 잠시 들러 라면을 몇 개를 장만했다.

비가 오는 팜플로나


배가 고프다. 어제 지나가다 본 '빠에야'집이 보여 들러보았다. 종업원은 영어를 못한다. 메뉴판을 봤는데 전부 스페인어라서 뭐가 뭔지를 몰랐다. 휴대폰 번역기를 돌렸다. 렌즈를 메뉴판에 붙이고 번역된 텍스트를 훑었다. 메뉴판에는 빠에야라는 글씨가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유하 씨가 밖으로 나가 입구에 있던 빠에야 사진을 찍어서 종업원에게 보여줬다. 그제야 알아본다. 레드와인도 한잔씩 시켰다. 바게트 빵과 올리브유가 식전에 나왔다. 배가 고파 허겁지겁 먹었다. 올리브유에 찍은 바게트는 기가 막힌다. 부드럽게 녹는다. 이렇게 먹지도 않았으면서 바게트가 맛없는 빵이라고 치부했던 지난날들이 후회스러웠다.

빠에야. 맛있었다.

잠시 뒤, 빠에야가 나왔다. 냄새부터가 좋다. 포크로 밥 뜨고 호호 불어서 입으로 넣었다. 너무나 뜨거워 입천장이 까졌다. 하지만 맛을 음미했다.
'으음~'
해물의 향이 느껴지는 은은한 짠맛과 고소함이 입안을 감돈다. 속살이 보이는 새우가 몇 개 보인다. 나이프로 3등분을 하고 하나를 먹었다. 살이 오동통한 게 만족스럽다. 거기에 마지막으로 레드와인을 들이켰다. 여기는 천국이다.

나는 만족스러운데 유하 씨는 어떤지 궁금했다. 얼굴을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 순례길에서 본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흥얼거리며 '너무 좋다'는 말을 계속하신다. 그 모습을 보니깐 웃음이 나온다. 내가 엄마 밥을 먹을 때 엄마의 기분이 이런 것일까 생각이 든다. 밥 먹을 때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표정으로 먹어야 주변 사람이 행복해할 것 같았다. 디저트로 옆에 있던 젤라토 가게에 갔다. 아이스크림이 찰진 게 꽤 좋다.

후식으로 먹은 젤라또


풍족한 점심을 마치고 저녁거리를 사기 위해 대형마트로 갔다. 어제 우리보다 늦어져 '주비리'에서 주무셨던 섭이 형님이 마트에서 돌아다니신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했다. 섭이 형님은 같은 호스텔에서 묵는다고 하신다. 잘됐다. 같이 찜닭 해 먹으면 되겠다.


숙소로 돌아와 낮잠을 자고 일어나 찜닭을 만들었다. 냄비밥도 했는데 어제랑은 다른 쌀을 써서 찰기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콜라에 간장으로 만든 찜닭을 먹었다. 사람들이 감탄한다. 단짠의 끝인 콜라와 간장은 실패할 리가 없다. 소맥이랑 와인도 곁들였다. 처음에는 혼자 가는 순례길을 걷고 싶었다. 하지만 여러 명이서 같이 고생과 행복을 공유하는 것도 나름의 매력인 것 같았다.

오늘 만든 밥과 찜닭. 내가 만든거지만 진심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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