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24 무거운 아침. 이틀 쉬고 난 다음날이어서 피곤함을 이길 수가 없었다. 6시에 일어났지만 다시 자버렸다. 7시에 다시 일어났다. 아침으로 어제 산 라면과 남은 김치랑 먹었다. 그것만으로는 성이 안차지 않는다. 조식으로 마련된 빵과 오렌지주스가 먹었다. 식탁에 있는 크로와상을 오븐에 구워 버터와 잼을 바르고 한입 했다. 기가 막혔다. 앞으로 크로와상을 사랑하겠다.
아침에 본 팜플로나의 거리
호스텔은 순례길을 살짝 벗어난 곳이었다. 순례길을 표시하는 조개표시판을 찾으러 갔다. 어떤 성채를 지나 조금 걸어가니 금방 보였다. 그리고 맘에 들지 않던 독일인이 걸어가는 게 보인다. 생장에서부터 우리랑 같이 순례길을 시작한 놈이다. 한국인이 여러 명이니 아침 출발 때 부산스럽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불만스러웠는지 우리에게 계속해서 꼽을 준 놈이다. 게다가 웃는 소리가 남을 비웃듯 깔깔거려서 정이 안 가는 놈이다. 그놈과 인사하기 싫었지만 카미노의 길이 하나이니 어쩔 수 없이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인사는 대충 했다.
팜플로나의 거리
독일인 옆에는 스페인어를 잘하는 한국인도 있었다. 그는 론세스바예론부터 만났는데 왠지 우리랑 엮기기 싫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항상 혼자 가거나 외국인과 동행하면서 간다. 외국까지 와서 한국인을 보고 싶진 않은가 보다. 그들과는 같이 가진 않고 앞섰다 제쳐졌다 하면서 걸어갔다.
팜플로나를 지나 언덕을 넘어 가는 길
전에 왔던 길들과는 달리 꽤나 완만한 길들이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자갈이 많아서 발이 조금씩 아프다. 옆에 있는 유하 씨는 이틀 전과는 다르게 편한 기색을 보인다. 별 걱정은 안 해도 될 듯하다.
언덕에서 본 강아지
완만한 길들이 펼쳐져 있지만 계속 오르막이다 보니 점점 지치기 시작했다. 숨을 헐떡일 때쯤 꼭대기에 올라왔다. 쇠로 된 조형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곳이 그 유명한 '용서의 언덕'이라는 곳이다. 힘들게 올라온 나의 발에 용서를 주기 위해 잠깐 쉬라고 만들어진 언덕이라고 불리는 걸 어디서 들은 것 같다.
순례길의 상징인 조개껍데기
잠시 쉬고 있었다. 바람이 세차게 분다. 기분이 좋아서 바람을 만끽했다. 2분 정도 지나니 땀이 식어서 급속도로 추워진다. 벗었던 패딩을 주섬주섬 입었다. 그리고 앉아 깊게 생각해봤다. '나는 여기 오면서 내 삶에서 무엇을 용서를 해야 할까?' 철학적인 고뇌를 하고 싶었지만 별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냥 사진을 찍으면서 편하게 쉈다.
용서의 언덕
용서의 언덕을 내려가는데도 계속 자갈밭이다. 내려가는 길이 더 힘들다. 2시간 정도 걸으니깐 마을이 보인다. 일행들을 보니 상당히 지친 것 같다. 유하 씨는 다리를 절뚝이고 어머니는 스틱에 의지하여 허리를 구부리고 일어나질 못하신다. 섭이 형님은 한참 뒤에서 따라오는 게 보인다. 얼른 숙소를 찾고 싶었다.
내려가는 길에 본 풍력발전소
순례길을 같이하는 우리 일행들
어느 정도 갔을 때 공립 알베르게가 보였다. 거기 말고 구글에서 본 굉장히 좋아 보이는 사립 알베르게로 향했다. 분명 겨울에도 문을 연다고 적혀있었다. 우리가 들어갔지만 불이 꺼져있고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헬로우? 올라?" 소리를 내니깐 스탭이 나온다. 그는 우리에게 겨울이라 문을 닫았다고 미안하다고 말한다. 다시 공립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다리가 천근만근이다.
마을로 가는길에 찍은 성당
돌아가는 길에 식당이 하나 보인다. 지친 몸을 그곳에 맡기고 싶었다. 들어가서 밥을 먹었다. 본 요리가 나오기 전에 바게트와 올리브유, 발사믹 소스가 나왔는데 다들 말도 없이 허겁지겁 먹었다. 공짜로 나온 와인도 들이켰다. 전식으로 스파게티가 나오고 본음식도 나왔다. 이것도 허겁지겁 먹고 디저트까지 나와서 행복하게 밥을 먹었다.
말이 있어서 같이 찍었다.
식당에서 나와 공립 알베르게로 가는데 잠이 미친 듯이 쏟아진다. 숙소에 와서 씻고 잠시 누웠는데 그대로 자버렸다. 7시쯤에 눈이 떠졌다. 저녁거리를 사기 위해 근처 슈퍼로 갔다. 그저께부터 유하 씨가 말 놓으라고 했는데 존대하는 게 편해서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장을 보면서 말 놓을 정도로 친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유하 씨에게 말 놓는 조건으로 서로 같이 말 놓자고 해서 같이 놔버렸다. 같이 동행하는 사인데 수평적인 관계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