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25 언제나 아침은 분주하다. 어제 샀던 베이컨을 구웠고 바게트를 잘랐다. 냉장고에 넣었던 오렌지를 꺼내 사람들과 같이 먹었다. 누군가가 냉장고에 남겨둔 토마토소스를 꺼내 바게트 빵에 묻혔다. 그리고 베이컨을 얹혀서 한입 물었는데 꽤나 괜찮다. 세븐업으로 목을 축였다. 계란만 있었으면 더 좋았을 건데. 그래도 그렇게 먹으니 든든하다. 오늘 힘내서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출발하는 우리 일행의 모습
걷기 시작했다. 10분쯤 걸었는데 양희님(같이 동행한 모자 중 어머님)이 한국에 있는 15살의 따님과 영상통화를 한다. 목소리에서 엄마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귀여웠다. 몇 시간을 걷고 유하도 아빠한테 전화를 한다. 나도 조만간 부모님한테 전화를 해야겠다.
카미노에서 자주 만나는 풍경.옛스러운 모습이 좋다.
2시간 정도 걸었다. 한 마을에 도착했는데 작은 베이커리가 보인다. 나는 어제 산 과자가 있어서 들어가지 않고 기다렸다. 사람들이 빵을 사고 나온다. 나한테 한입 줘서 먹어봤다. 방금 전에 만든 빵인지 따뜻하면서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웠다. 어제 과자 괜히 샀다.
빵집
빵집이 있던 마을의 모습
우중충한 하늘 아래를 걷고 있었다.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진다. 이내 비는 거세진다. 그냥 가려고 했지만 도저히 안될 것 같다. 큰 빌딩 밑으로 들어가 판초우의를 꺼내 입었다. 진짜 순례자 느낌이 나서 사진도 한 장 찍었다. 오늘 목적지의 초입에 왔다. 근처에 주유소가 있었다. 그곳에 딸린 슈퍼를 지나치는데 창문으로 나무 지팡이가 보인다. 전부터 사려고 했던 것인데 이제야 발견했다. 냉큼 들어가서 하나 구입했다. 여태 유하의 등산스틱을 하나 빌렸는데 이제 다시 돌려줬다. 지금까지 빌려줘서 고마웠다.
비가 오기 시작했다.
비를 맞으면서 알베르게로 왔다. 직원이 안으로 안내를 했다. 실내 농구 경기장이 있었고 거기에 있는 스탠드에 젖은 우의를 걸어놓으라고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늘 잘 방으로 갔다. 깔끔한 게 만족스러웠다. 1시간 정도 지나 섭이 형님이 방으로 들어왔다. "아 내일 버스 타고 '로그로뇨'로 점프를 뛰어야겠어요. 무릎에 무리가 심하게 와서 걷지를 못하겠네요." 순례 둘째 날부터 무릎이 아프셨던 섭이 형님이 이제 한계에 도달한 것 같았다. 여기서 이틀거리인 '로그로뇨'로 간다고 하니 동행하지 못해 너무 아쉬웠다. 하지만 몸이 더 중요한 것이니 그렇게 할 수밖에...
오는 길에 보였던 풍경들
어느 정도 정리를 하고 우리 5명은 밥을 먹으러 나갔다. 하지만 가는 곳마다 문을 닫았다. 저 멀리 오픈한 곳이 보인다. 안으로 들어가니 펍이다. 사람들이 맥주를 마시며 축구를 보고 있다. 그 모습이 엄청 열정적이다. 응원하는 팀이 페널티킥으로 점수를 잃었나 보다. 한 사람이 맥주를 마시다 일어나 TV에다가 막 뭐라고 따진다. 이것이 스페인의 축구 사랑인가?
스페인사람들의 축구열정은 대단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기다리는데 펍의 사장이 우리에게 5시 이후에 식사를 할 수 있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밖으로 나왔다. 알베르게에 오면서 보였던 대형슈퍼에서 장을 봤다. 오늘 소고기에 피자와 만찬을 먹자고 했다. 와인과 맥주도 사고 좋았다. 그렇게 사도 5명이서 n분의 1 하니 7유로 밖에 나오질 않았다. 까미노 전에는 무조건 혼자 걸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같이 걸으면서 많은 도움도 되는 걸 느낀다. 무엇을 해도 행복이 배가 되고 의지도 되니 좋은 점이 많다.
오는 길에 한 컷 찍었다.
장을 보고 다 같이 방으로 들어와 쉬고 있었다. 론세스바예론에서 만났지만 혼자 고독히 걸어가던 노란색 옷을 입은 한국 남자분이 들어오신다. 우리를 보면 항상 찡그린 표정을 짓고 피하던 그가 화색이 돌면서 말을 건다. 오는 길에 웃긴 상황을 겪었다며 이야기보따리를 신나게 푼다. 내용인 즉, 오는 길에 어떤 바에 들렀다는 것이다. 거기 여직원이 있었는데 한국 남자분에게 유혹의 눈길을 보내며 말을 계속 걸었다는 것이다. 애써 피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의 손을 잡더니 오늘 자신의 집에서 자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당황스럽고 무서워서 변명을 둘러대고 나왔다고 한다. 그 이야기가 신기했다. 하지만 그보다 그분이 처음과는 달리 우리에게 웃는 얼굴로 말을 걸었다는 게 더 신기했다. 드디어 마음의 문을 열은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