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로뇨로 가는 길
2020/01/27
알베르게를 나왔을 땐 적절히 차가운 공기에 걷기 좋았다. 걸으면서 문득 '청춘'에 대해 깊은 생각에 빠졌다.
나의 기준에는 20살에서 40살까지가 청년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나는 30살이니 청년기의 반이 지났다. 청춘이란 게 붙잡으려 해도 붙잡을 수 없음을 느낀다. 마치 손으로 꽉 잡은 모래가 손틈 사이로 흩어지듯이 말이다.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나의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시어도어 로스케
영화 '은교'에서도 나온 미국의 '시어도어 로스케'라는 시인의 말이다.
이 말처럼 젊음이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니 그것이 내 곁을 떠난다고 해서 아쉬워하면 안 된다. 억지로 젊음을 부여잡으려고 하는 건 탐욕이다.
그냥 지금 남아있는 청춘의 시기를 재밌게 써야지.
오늘은 '로그로뇨'라는 도시로 간다. 점프를 하려고 한 우섭이 형도 다시 합류했다. 구름 낀 날씨라 걷기가 편했다. 가는 길도 평지가 많아 금방 도착했다. 로그로뇨 전에 도착한 도시에서 쉬고 있을 때 무엇을 먹을까 고민했다. 로그로뇨에 중국 뷔페식당이 있다고 얘기가 나왔다. 그곳에서 배 터지게 먹자고 약속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뜬금없는데 살면서 내 행동과 말 때문에 상처 받은 사람들한테 너무 미안해."
걷는 도중에 옆에 있는 유하한테 내 한풀이를 했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짧게 짧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렇게 마음이 애리는건 지금이었다. 인생을 크게 잘못한 것 없이 살았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이 있을 거란 생각에 가슴이 미어진다.
"지금 미안한 사람들이 몇 명 생각나는데 나중에 한국 돌아가면 꼭 사과해야겠어."
반드시 하겠노라 다짐했다.
도시에 도착하고 조금 더 걸었다. 15분 정도 걸어서 그곳으로 왔다. 돈은 13유로가 된다. 가성비 좋다. 초밥도 있고 이것저것 있었다만 제일 좋았던 건 철판에 구워주는 스테이크였다. 3 접시는 먹은 듯했다.
밥을 먹으니 퍼지기 시작했다. 원래는 로그로뇨가 아닌 더 멀리 가려고 했지만 더 갈 수가 없었다. 숙소를 찾아보는데 근처에 좋은 아파트를 빌려주는 곳을 찾았다. 가격도 저렴해서 오늘은 도시생활을 즐기기로 했다. 54유로를 결재하고 그곳으로 향했다.
방으로 들어오니 완전 좋았다. 티비는 커브형 평면티비에 정말 좋은 아파트였다. 오랜만에 느끼는 문명생활이다. 떠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 행복도 내일 8시 반까지밖에 즐기지 못한다. 여기 있는 동안은 즐겨야지. 티비로 유튜브를 틀어 걸그룹 뮤비를 봤다. 5명이서 이러고 있으니 설날 같았다. 설 연휴 마지막 날에 느끼는 편안함이다. 아파트 근처에서 장을 봤다. 마트가 상당히 컸다. 도시생활이 이렇게나 좋다.
점심에 많이 먹어서 저녁은 별로 생각나지 않았다. 양희님께서 가져온 라면 두 개로 야식을 해 먹었다. 야식을 먹으면서 옛날 팝송을 들었는데 분위기가 좋았다. 분위기에 취해 눈이 슬슬 감기기 시작했다. 내일이면 다시 걷는다는 게 원망스러웠다.
- Torres Del Rio에서 Logroño까지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