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노 길의 십자가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부르고스'로 가는 길

by 조재현

2020/01/31
오늘의 아침식사도 파스타이다. 토마토소스를 다 써서 케첩으로 만들어 먹었다. 후딱 밥 먹고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40km를 걸어 '부르고스'라는 도시로 갈 수도 있다. 어머니께서 가는 길에 피자가 유명한 곳이 있다고 알려 주셨다. 15km 정도 후에 피자집이 나온다. 피자를 먹은 뒤에 만약에 체력이 남으면 더 가기로 했다.

여전히 나오는 조개 표지판

가는 길에 부슬비가 내려서 우비를 꺼내 입었다. 굳이 꺼내 입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나중에 더 내릴 것 같아서 그렇게 했다. 그렇게 마을을 하나 지났는데 산이 보인다. 오르막을 오르는데 너무 더워서 가방을 거의 내평겨쳤다. 그리고 빨리 우비를 벗었다. 우비가 특수 비닐 소재라 열이 안에서 빠지지 않았다. 웬만하면 우비는 입어서는 안 되겠다.

부엔 카미노!('좋은 까미노길이 되길 바라!'라는 뜻)

오르막에 오르고 계속해서 평탄한 내리막을 걸었다. 오랜만에 산길이라 반가웠다. 그런데 안개가 많이 낀 데다가 진흙탕길이다. 신발에 모래가 계속 들어가고 진흙이 무거울 정도로 끼인다. 걷기가 싫어졌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다

지나는 길에 자그마한 돌무덤에 십자가가 꼽혀있다. 십자가 중간에는 십자가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사진이 붙어있다. 자전거를 옆에 끼고 엄지를 치켜세우고 찍은 남자. 그는 도전을 위해 카미노를 하시다 이곳에서 세상을 달리 한 듯하다. 자신의 도전을 위해 이곳에 오셨다가 생을 마감한 이 분은 어떤 마음으로 저승의 계단을 한걸음 한걸음 내디뎠을까?

뭔가 마음이 찡했다.

산길을 따라 내려오니 바로 마을에 다달았다. 그 마을에 피자집이 있었다. 나와 유하가 일찍 도착해서 먼저 시켰다. 양희님과 병찬이도 곧 따라와서 피자를 시켰다. 4개를 시켰는데 그중에서 하와이안 피자가 제일이었다. 밥을 먹었는데도 피곤하지가 않아 더 가기로 했다. 아파서 점프를 해서 앞서가신 우섭이 형님이 연락이 왔다. 오늘 먼저 '부르고스'로 향했다는 것이다. 길이 어떤지 여쭤보니 약간의 오르막이 힘들 뿐 나머지는 평탄하다고 하신다. 용기를 내어 도전했다.

피자집과 피자

피자집을 벗어나 평탄한 길이 나온다. 길을 중간에 두고 초원이 펼쳐져 있다. 그 초원을 수십 마리의 소들이 즐기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었다. 소뿔로 들이받을 것 같아 무서웠지만 다행히 잘 찍었다.

소들

평탄한 길을 지나니 힘든 오르막이 나온다. 그 끝에는 정상이 나온다. 십자가가 날 반겨주고 있었다. 뭔가 멋있었다. 사진을 찍는다고 시간을 꽤 투자했다. 앞에 보이는 내리막을 다시 걸었다. 저기 멀리 큰 도시가 보이는데 '부르고스'임에 틀림없다. 구글에는 3시간이 걸리는데 더 빨리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언덕 정상에 있던 큰 십자가

하지만 그 생각은 멍청한 생각이었다. 보이는 것과는 달리 꽤나 거리가 멀었다. 서서히 지치기 시작했다. 옆에 유하도 다리를 절뚝거리는 게 보인다. 그나마 평지라서 다행이었다.

부르고스로 가는 길에 있던 마을. 이마을에서 선사시대 유적이 많이 발굴되었다고 한다.

먼저 부르고스 알베르게에 도착하신 섭이 형님이 가는 길에 버거킹이 있다고 알려주신다. 일단 그곳을 목표로 걸었다. 6시쯤에 도착을 해서 햄버거를 시켰다. 이벤트로 하는 햄버거를 주문하고 세트를 라지로 했다. 컵이 1L 정도가 되는 듯했다.

부르고스로 가는 길

햄버거를 먹고 다시 걷는데 힘이 난다. 팜플로나에 40km 걸을 때와는 달랐다. 그런데 아까 마신 1L 이상 마신 음료수 때문에 작은 볼일이 심하게 마려웠다. 지나가다 공중화장실에 들어가서 해결하고 싶었지만 스페인 도시에는 화장실이 왜 이리 없는지 원.

저녁이 되어서 부르고스로 왔다.

엄청 시설이 좋다는 부르고스 공립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할아버지께서 친절하게 맞이해주시는데 인상이 편하고 좋았다. 나도 늙어서 저렇게 되고 싶었다. 숙소를 둘러봤는데 호텔 수준이었다. 유명한 이유가 있었다. 배정받은 침대로 가니 우섭이 형님이 먼저 체크인을 하시고 쉬고 계셨다. 며칠만에 만나서 무척이나 반가웠다.

밤이 되어 부르고스에 도착했다.

40km 행군의 회포를 풀기 위해 근처 맥주집에 잠시 나가서 맥주를 마셨다. 맥주도 맛있어서 3잔이나 시켜먹었는데 취기가 심하게 왔었다. 얼른 가서 쉬어야지. 내일은 이 도시에서 하루 더 쉰다

부르고스의 밤거리

-Espinosa Del Camino에서 Burgos까지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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