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03 알베르게의 문을 열고 나왔는데 안개가 심하다.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영 좋지 못하다. 그냥 걸었다. 혼자 걷는 거라 생각이 많아지지만 생각이 없어지기도 했다. 앞만 보고 계속 걸었다. 어느 순간 보니 조개표시판이 보이지 않고 뒤따라오는 사람도 안 보인다. 구글 지도를 봤는데 카미노 길에서 한참을 벗어나 있었다. 갈림길에서 꺾지 않고 그냥 걸어가서 그런 것 같았다.
안개가 자욱했다.
내비게이션으로 다시 카미노 길을 찾아서 갔다. 제길로 가는데 시간이 꽤나 걸렸다. 나보다 15분 정도 늦게 나온 유하를 발견했다. 인사하고 다시 걸었다. 오늘 마음을 비우고 걸어서 기분은 좋았지만 안개 때문인지 자꾸 몸이 축축 쳐진다.
안개가 자욱한 길
도착하는 마을 입구쯤에 다 달았을 때 운하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기로 배가 다닌다. 배에 탄 사람들이 인사해주는데 반가웠다.
안개가 낀 강을 지나는 배. 그 배안의 사람들은 내게 반갑게 인사해줬다.
마을에 도착하고 묵으려는 알베르게로 왔다. 나보다 한참을 뒤에서 걷던 유하랑 알베르게 문에서 마주쳤다. 얘는 왜 이렇게 빠른 거야?
마을에 보였던 기차길
1시 40분쯤에 체크인을 했는데 주인분이 2시에 슈퍼들이 잠깐 문을 닫아서 후딱 가보라고 한다. 그곳에 갔는데 삼겹살을 파는 것이다. 냉큼 집어 들어서 샀다. 돌아와서 구워 먹었는데 한국의 삼겹살 맛이 났다. 한식의 그리움이 조금은 사라졌다.
매일 보는 카미노 길 표시판
나머지 일행 3명이 곧 도착했다. 오늘은 일찍 도착해서 여유가 있었다. 알베르게 안에 탁구장이 있어서 같이 탁구도 했다. 처음에 우리를 차갑게 대했던 스페인어를 잘하는 우철 씨도 우리와 같이 탁구를 쳤다. 자주 만나니 마음의 문을 열은 듯했다.
탁구를 쳤다.
5시에 마트를 다시 열어서 다 같이 갔다. 갑자기 빠에야를 만들어 먹고 싶어 졌다. 유하랑 상의를 했는데 반신반의한 표정으로 "한번 해봐"라고 한다. 일단 재료를 사고 만들어 보기로 했다.
마트에 다행히 빠에야를 쉽게 할 수 있게 한 세트가 있어서 그것으로 만들었다. 프라이팬에 양파와 마늘, 그리고 베이컨을 구웠다. 그다음으로 해물로 육수를 내고 빼내어 구웠다. 그리고 구웠던 재료를 다 넣고 육수와 쌀을 넣어 끓였다. 처음에 육수를 맛봤을 때는 약간 짜서 표정이 좋지 않았다. 옆에서 유하가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을 지었다. 30분 정도 지나니깐 쌀이 익었다. 먹어보니 꽤나 괜찮았다. 양을 생각보다 많이 해서 알베르게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다들 맛있게 먹으니 기분이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