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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재현 Jan 28. 2021

지루함의 한가운데를 걸어가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2020/02/04
오늘도 안개가 자욱했다. 별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건 여전했다. 얼굴과 옷에 미스트를 뿌린 것처럼 안갯속의 물방울들이 달라붙었다. 해가 뜨고 아침이 지나니 안개가 사라졌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걸었다.

안개가 자욱했고 흐렸다.

조개표시판 비석이 계속해서 서있는 길을 걸었다. 꽃다발이 보인다. 하트모양으로 만들었는데 누구를 위한 것인지 궁금했다. 생화였는데 최근에 이렇게 해놓은 듯했다. 꽃을 보고 또 생각없이 걷고 있었다. 흙길에는 달팽이가 가로질러 가고 있다. 무척이나 열심히 간다. 이 달팽이는 어디로 가기에 이렇게 열심히 기어가는걸까? 어느새 '까리온'이란 도시에 도착했다.


나는 너무나 일찍 도착해서 도시 하나를 더 가기 위해 걸었다. 다음 도시까지는 17km였다. 까리온에서 유하도 마주쳤는데 자신도 다음 도시까지 갈 것 같다고 한다.

까리온 마을 초입과 마을 안
예수의 탄생 조각과 까리온 성당에 들어갔을때 봤던 성당 내부

까리온을 지나니 두 개의 갈림길이 나왔다. 표지판을 보고 거리가 짧은 곳을 택했다. 거기를 택한 것이 다행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어느 고개를 살짝 넘으니 평원이 나온다. 그곳을 걸었다. 다리가 아프지 않았지만 끝없는 평원이 계속 이어져 지루함을 넘어서서 무서웠다. 앞뒤를 살펴봐도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경치지만 오늘만큼은 아름답다기 보단 무섭다. 햇빛이 뜨거워 목이 많이 말랐다. 가지고 있던 물도 다 마셔서 걷는 게 고역이었다. 3시간 정도를 그렇게 걸었다. 아마 14km는 되었을 것이다. 이 길만 넘으면 마을이 나온다는데 그곳에서 오늘 자야겠다.


걸으면서 휴대폰을 봤는데 어머니와 병찬이, 섭이 형님은 까리온에서 묵는다고 하신다. 갑작스럽게 찢어지니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앞으로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아무 것도 없는 평원에 길하나 뿐이었다.

지루한 길을 끝내니 마을이 하나 나왔다. 그 마을에서 딱 하나 문을 연 알베르게로 갔다. 들어가자마자 물부터 찾았다. 침대로 가니 난로가 있어서 운치가 있었다. 침대를 고르고 짐을 내려놓고 겉옷을 벗었다. 땀범벅이다. 샤워를 바로 해야겠다.  샤워를 끝내고 나오니 유하가 와있었다. 얘도 까리온을 넘어 더 왔나 보다. 저녁이 되어 알베르게에 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맥주도 한잔 마셨다. 따로 떨어진 3명에 대한 아쉬움을 유하와 얘기했다.

지루했던 길의 마지막과 그 마지막에 있던 단비같던 알베르게

주인아저씨가 엄청 친절히 우리를 대접해주신다. 먹을 것을 엄청 주시더니 물까지 공짜로 줬다. 아저씨가 너무 좋아져서 사진도 한 장 찍었다.

주인아저씨는 친절하셨다.

밤에 자려는데 오랜만에 나의 최애 만화 중 하나인 드래곤볼을 봤다. 너무 재밌어서 새벽 1시까지 보다가 그때까지 잠을 못 잤다. 내일 힘든 길이 될 것 같은 예상이 들었다.

웃으면서 찍었지만 지루한 길 때문에 마냥 즐겁진 않았다.

-이날은 Frómista에서 Calzadilla De La Cueza까지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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