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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재현 Jan 28. 2021

고양이도 짝이 있거늘 나의 짝은 어디 있는교?

힘든 하루

2020/02/05
7시가 되어서 일어났다. 4시간만 자서 몸이 무거웠다. 밖으로 나왔는데 알베르게의 bar도 문이 닫혀있었다. 밥은 다음 마을에서 먹어야겠다. 오늘 39km를 걷는 예정인데 불안이 엄습해 온다. 어떻게든 되겄지 뭐.

출발할 때 모습과 일출

걷는데 힘이 나질 않는다. 햇빛도 강렬해서인지 아니면 혼자 걸어서인지는 몰라도 많이 힘들다. 다음 마을에 도착했는데 10시가 되었다. 이른 시간이라 가게들이 문을 열지 않았다. 쫄쫄 굶은 배를 부여잡고 다음 마을로 떠났다.

가는 길에 봤던 꽃봉우리

마을 끝부분에서 방치해둔 운동기구들이 있는 놀이터가 보여서 카메라를 놓고 혼자서 놀았다. 약간 쓸쓸했지만 나름 재밌다.

혼자서 놀았다.

11시 10분쯤이 되어 문을 연 식당을 발견했다. 빠에야가 있어 주문하려고 했다. 40분이 걸린다고 한다. 주문을 바꿔 스테이크를 시켰다. 고기가 엄청 큼직했고 곁들여 나온 샐러드와 감자도 양이 푸짐했다. 콜라도 두 잔을 시켜 먹었다. 허겁지겁 먹어서 배가 금방 터질 듯했다.

점심 스테이크. 맛도 좋고 양도 많았다.

밥을 먹고 나왔다. 앞에 한쌍의 고양이들이 있었다. 한숨이 나온다.

서로 껴안고 눈을 감고 있다. 마치 주말의 신혼부부처럼 말이다.

부러웠다.

고양이도 짝이 있거늘 나의 짝은 어디 있는교?

고양이도 짝이 있거늘, 나의 짝은 어디 있는교?

밥을 먹으니 힘 났지만 잠이 오는 건 여전했다. 할 수 없이 천천히 걸었다. 오늘은 걱정이 밀려온다. 표지점까지 갈 수 있을까...?

오늘의 까미노 길들
오늘의 까미노 길들

오후 4시가 되었는데도 오늘 가려는 마을에 도착하지 못했다. 10km 정도 남은 것 같았다. 오늘도 드넓은 평원이 계속 깔려있어서 지루함이 더했다. 그래서 더 힘들어진다. 억지로 꾸역꾸역 걸어갔다. 5시쯤이 되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한다. 여기서 드러눕고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아마 나보다 먼저 출발했던 유하는 이미 알베르게에 도착하여 쉬고 있을 듯했다. 그 상상을 하니 유하가 부러워졌다.

눕고 싶었던 길과 일몰

도착했다는 카톡이 오면 먼저 빨래 돌리라고 말하려고 생각하던 찰나 앞에 벤치에서 반쯤 누운 채로 퍼져있는 유하가 보인다. 오늘 가는 길이 힘들어 30분 전부터 이러고 있다고 한다. 힘들면 카톡으로 말해서 같이 가자고 하지. 혼자 가겠다고 고집부린 게 약간 미련해 보이면서 안쓰러웠다. 벤치에서부터는 같이 걸었다. 일어나는 것도 힘겨워해서 도와줬다.

가는 길에 봤던 풍경

마을에 도착하기 20분 전부터 왼쪽 앞 종아리가 당기기 시작했다. 빨리 도착하고 싶지만 몸이 제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오늘 무리를 많이 했다.

십자가

겨우겨우 숙소에 왔다. 1층에는 라운지였고 2층이 방이었다. 계단 위를 올라가 짐을 풀었다. 다행이라는 생각보다는 너무 힘들었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이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내일을 위해 근처 마트에 가야 했다. 구글에 분명히 문을 열었다고 하는 마트를 갔는데 닫아버렸다. 식당도 여기저기 뒤졌는데 다 닫혀있다. 마을이 휑한 게 무서웠다. 좀비 마을 같았다. 10분 정도 걸어가면 주유소 옆에 24시 편의점이 있다고 해서 그곳으로 갔다. 식당도 하나 있었는데 8시에 문을 닫는다고 해서 떨이로 있는 햄버거를 먹었다. 그리고 콜라와 스낵바를 사서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밤에는 스산했다.

알베르게 침대에 누워 위를 봤다. 천장이 오래되어서 약간 불안했다. 방들도 위쪽이 뚫려있어 옆방의 소음도 다 들렸다. 잠시 일어나 1층 라운지로 갔다. 오늘의 알베르게에는 한국인은 아예 없고 외국인들만 있었다. 라운지에는 독일인 한 명이 있어서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독일에서부터 걸어왔다고 한다. 그 말을 하더니 침낭을 펴고 그 상태로 골아떨어진다. 대단했다. 그렇게 그녀와 대화가 끝나고 일지를 쓰고 2층으로 올라가 침대로 돌아왔다.

가는 길에 본 조각상

-이날은 Calzadilla De La Cueza에서 El Burgo Ranero까지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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