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06 "저희 어제 은하수 봤어요! 자러 간 다음에 한 시간 있다가 나왔는데 달 없어지면서 은하수 보이더라고요. 재현님도 오늘 꼭 보세요~"
일출보러 낙타 혼자 타고 감
은하수를 보고 감격에 젖은 호영 씨와 혜영 씨(카이스트 커플)는 내게 진심으로 은하수를 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런 말을 했지만 나는 뭔가 배가 아팠다. 카이스트 커플은 그렇게 스페인 일행들과 호텔로 떠났다. 새벽에 한 시간만 더 기다릴걸...
사하라 사막에서의 일출
어제의 현지인 가이드(이름을 까먹었다ㅠ)는 나를 어디론가 데리고 간다. 그는 나를 혼자 어떤 모래언덕으로 데려가더니 일출을 보여준다. 여행 중 본 수많은 일출 중의 하나였다. 딱히 감흥이 없다.
혼자 있었다.
다시 베이스캠프로 돌아가서 아침밥을 먹었다. 어젠 북적하더니 나 혼자 남으니 외로움이 몰려온다. 그런 생각을 잠시 하다 가이드가 또 나를 어디론가 끌고 간다.
가이드
가이드의 신상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그는 '베르베르족'(사하라 사막 인근에 분포해 있는 소수민족)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중간에 계속 '예~ 호우 호우~'이런 추임새를 계속하면서 '아프리카 아프리카~'라고 한다. 처음에는 호응을 잘해줬다. 하지만 몇십 분째 들으니 노이로제에 걸려서 말을 아꼈다.
여기서 하루 종일 있었다.
낙타를 타고 모래언덕을 30분쯤 지나니 어떤 허름한 건물이 덩그러니 있었다. 뒤를 돌아봤는데 한국인으로 보이는 두 명이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남자분 여자분이 오셨는데 남자분은 굉장히 어려 보였다. 이야기를 해보니 또 카이스트 출신에 스웨덴에서 교환학생을 하다가 여행을 온 것이라고 한다. 여자분은 어제 호텔에서 잠시 스쳐 지나가며 만났었는데 그분은 독일에서 직장생활을 하시는 분이고 휴가차 이곳에 오신 거라고 한다. 사하라 사막만 몇 번은 오셨다고 했다.
잠만 계속 잤다.
그 허름한 집에서 일몰 전까지 몇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뭐 딱히 기억에 남는 건 없었다. 샌드보드 몇 번 탔는데 어제랑 너무 똑같아서 질려버렸다. 밥도 맛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센스 있게 코카콜라를 줬지만 시원하지 않았다. 할 게 없으니 몇 시간을 누워서 잠만 잤다. 사막이라서 파리가 엄청 많았다. 거슬려서 화가 많이 났다.
이런거 시킬길래 해봤다.
일몰이 다가오니 가이드는 우리 3명을 끌고 베이스캠프로 돌아갔다. 가는 길에 다른 낙타 무리가 보인다. 그저께 헤어진 희정 누님과 양홍 형님을 다시 만났다. 반갑게 인사했다. 두 분은 첫날이라 기분이 엄청 업되어 있는 게 눈에 보였다. 가는 길에 보라색의 풍경이 예뻤는데 카메라 배터리가 다되어서 제대로 찍지 못했다.
의자
어제와 메뉴가 같은 저녁식사를 했다. 마찬가지로 캠프파이어도 어제처럼 했다. 이곳에서의 두 번째 날인 나는 너무 재미가 없었다. 조금만 있다가 자러 갔다. 오늘은 5시에 일어나서 은하수를 꼭 보리라 다짐했다. 카이스트 학생인 도영 씨도 은하수 얘기를 들으니 그때 일어나겠다고 말을 한다.
이렇게 베이스 캠프로 감
휴대폰을 보다가 잠깐 누웠는데 4시 반이 되었다. 어제 유심히 봤던 사진 포인트로 왔다. 도영 씨도 5분 정도 지나 그곳에 왔다. 나는 삼각대를 설치하고 은하수가 담기기 좋게 세팅을 했다.
꽤나 잘나온 사진
문제가 하나 있었다. 어제처럼 달이 너무 밝아 별들이 보이지 않았다. 계속 기다렸다. 기다리니 달이 모래사막 뒤로 떨어졌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숨어있던 별들과 은하수들이 미칠 듯이 쏟아질 듯이 보였다. 선명한 은하수는 내 생애 처음이었다. 감동에 잠시 젖었고 카메라로 사진을 웬만큼 찍고 다시 감상 모드에 들어갔다. 옆에 있던 도영 씨도 열심히 휴대폰 카메라로 찍는 게 보였다. 견우와 직녀가 사하라 사막에서 만나고 있음에 틀림없다.
은하수 입니다. 감상하세요.
달이 떨어지고 1시간 정도가 지나니 아침 어스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내 은하수는 다시 쏙 숨어버렸다. 벅찬 마음을 가슴에 품고 다시 베이스캠프로 돌아와 침대에서 편히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