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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네책방알바 Dec 04. 2021

애린 왕자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녹슨 경첩을 교체하느라 문을 뗐다. 문을 떼면서 부산에서 들었던 농담이 떠올랐다.

부산 학생이 서울로 전학을 갔다. 전학 첫날 친구가 없어서 심심했던 부산 학생은 책상에 낙서를 했다. 그걸 본 서울 학생이 “책상에 낙서하면 선생님께 혼나”라고 말했다. “맞나?”(그래?) 부산 학생이 물었다. “낙서 했다고 맞지는 않을 거야.” 서울 학생이 말했다. “그럼 확 문떼삐까?”(지울까?) 부산 학생이 말했다. “음, 문을 떼면 맞을 거야.” 나는 “문떼삐까?”라고 말하는 부산 학생의 표정과 억양을 상상하면서 늘 웃는다.

서울에서 살 때 회사와 학원에서 서울말을 써달라는 요청을 드물게 받기도 했지만 대부분 내가 구사하는 부산말을 즐겁게 받아줬다. 나도 나름 남다른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부산말을 버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딱 한 번 심각하게 고민했던 적은 있다. 태국에서 한국어 교원으로 일하려고 사이버한국외대에서 한국어교육을 전공했다. 졸업을 앞두고 교수들 앞에서 교육실습을 했다. 통과는 했지만 교수들은 서울말을 쓰라고 주문했다.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찬반 의견이 있겠지만 한국어를 배운 외국인들이 전부 서울말만 쓴다면 재미가 없을 것 같다. 아파트만 서 있는 도시 같다. 경상도방언을 쓰는 외국인도 있고 전라도방언을 쓰는 외국인도 있고 충청도방언을 쓰는 외국인도 있고 수도권방언을 쓰는 외국인도 있어야 문화가 더 풍성하고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2021년 우리 책방에서 아주 많이 팔린 책은-읽다가 호흡곤란을 느낄 수 있다는 경고문을 써 놓은-경상도방언으로 쓴 “애린왕자”이다. 경상도말을 하는 어린왕자라니. 언어도 보존하고 동네책방도 보호하는 책이라니. 독일의 틴텐파스 출판사와 한국의 이팝 출판사에 무한 감사를 드린다. 얼마 전에는 전라도방언으로 쓴 “에린왕자”가 나왔다. 앞으로 충청도방언도 나오고 북한방언도 나오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문을 달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문 사이가 잘 안 맞는다. 맞나? 안 맞는다고. 맞나? 안 맞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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