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셸리
어느 날 저녁, 책방에서 열린 북클럽에서 마거릿은 동생 월튼이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를 다 읽었다. 우리는 동시에 긴 탄식을 내뱉었다. 한동안 아무도 말이 없었다. 북극에서 보낸 편지를 읽은 탓인지 모두 입술이 얼어붙은 것 같았다.
“북극에서 그런 괴물을 만나다니.”
“괴물 같은 과학자도 만나고.”
“내 말이. 그 과학자가, 그 사람이 이름이 뭐랬지?”
“프랑켄슈타인.”
“마거릿 동생은 그 사람 얘기를 반신반의하면서 들었을 텐데 갑자기 그 괴물이 배에 나타나고 결국 그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사람은 죽고. 정말 충격을 받았을 것 같아.”
“소설에나 나올 법한 얘기잖아.”
“나는 그 괴물이, 참 그 괴물, 이름이 있었나?”
“프랑켄슈타인 아니야?”
“그건 괴물을 만든 박사 이름이야.”
“프랑켄슈타인은 대학교 4학년 때 괴물을 만들었다는데 왜 박사라고 부르지? 그땐 졸업 작품을 만들면 다 박사라고 불렀나?”
“교수들이 연구원이라고 불렀으니 박사후연구원이었던 건 아닐까?”
“천재인 건 맞는 거 같아. 대학에 입학해서 2년 만에 더 이상 배울 게 없어서 귀향하려다가 새로운 분야에 눈을 떠서 결국 괴물까지 만들었으니까.”
“없던 분야를 만들어서 전공한 셈이네.”
“아무튼 그 괴물 이름이 뭐야?”
“이름은 안 나와.”
“그 과학자가 자기 피조물 이름은 안 지어줬나 보네.”
“프랑켄슈타인이 만들었으니 프랭키 주니어라고 하자. 아니면 그냥 프랭키.”
“좋아. 나는 프랭키가 그 오두막 어두운 곳에 웅크리고 숨어서 가족에게 말을 배우는 장면에서 뭉클했어. 그건 마치 아기가 어머니 뱃속에서 어머니가 읽어주는 책을 들으면서 말을 배우는 것 같았어.”
“나는 책 읽는 소리를 음악을 듣는 것 같았다는 대목이 좋았어.”
“프랭키는 우리처럼 여기 북클럽에 왔어야 했는데.”
“그러니까. 그럼 좀 좋았겠어?”
“그 오두막에 프랑스인 가족이 아니라 한국인 가족이 살았으면 말 배우기가 더 쉬웠을 텐데.”
“그렇지. 그럼 책도 훨씬 더 많이 읽었을 거고.”
“프랭키가 무슨 책을 읽었다고 했지?”
“음, 실낙원, 플루타르크 영웅전 1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오두막 가족이 프랭키의 진짜 가족이 됐더라면 좋았을 텐데.”
“프랭키가 시각장애인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을 했다면 행복하게 살았을 텐데.”
“프랭키는 남매가 없는 틈을 노려서 노인하고만 얘기를 했어야 했어.”
“그러면 살인자가 되지 않았을지도 몰라.”
“그런데 인간들이 프랭키를 받아줄 수 있었을까? 프랑켄슈타인조차 못한 일을?”
“특히 한국 같은 외모지상주의국가에 오면 견디지 못했을 거야.”
“성형수술을 했겠지.”
“난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게 사람은 진짜 사람을 낳아서 기를 수 있는데 왜 기술적으로 사람을 만들려고 안달일까?”
“그것도 희한하게 꼭 사람 모습으로 만들어.”
“그러니까요. 사실 그럴 필요가 없거든.”
“프랑켄슈타인은 엘리자베스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서 길렀으면 행복하게 살았을 텐데.”
“정말 중요한 지점 같아. 출생률은 떨어지고 인구는 줄어드는데 인간을 낳아서 기르지 않고 인간을 닮은 인공지능, 로봇 같은 기계를 만들려고 하는 게 조금 기괴하네.”
“그건 인간이 비인간적으로 살기 때문에 발생하는 필연적인 결과야.”
“맞아. 프랑켄슈타인이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듯이 인간이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지.”
“프랑켄슈타인은 우리 아버지처럼 너무 무책임했어. 괴물이 바란 건 사랑과 우정이 전부인데 태어나자마자 버림을 받고 어느 누구도 받아주지 않았어. 나는 프랭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아.”
“나는 프랑켄슈타인이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시체 조각을 이어 붙여서 살려냈다는 걸 믿지 못하겠어. 그 괴물이란 게 프랑켄슈타인의 환각은 아니었을까?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의 다른 자아가 아니었을까. 프랑켄슈타인과 빅터. 마치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처럼 말이지.”
“와, 그럼 프랑켄슈타인이 조카, 친구, 애인을 죽였다고?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건 확실히 아니야. 마거릿 동생이 프랭키를 직접 봤다잖아.”
“프랑켄슈타인의 얘기에 홀려서 헛것을 봤을지도 몰라.”
“프랭키를 플라스틱에 비교해서 그렇지만 프랑켄슈타인과 프랭키의 얘기를 들으니까 인간이 플라스틱을 만들고 그 플라스틱이 인간을 죽이는 형국과 비슷한 것 같아.”
“대체 우리는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인간은 괴물을 쫓는 삶을 살고 있는 거 같아. 세계화라는 괴물, 자본이라는 괴물, 대도시라는 괴물. 개발이라는 괴물.”
“프랑켄슈타인은 어떻게 살아야 했을까. 죄를 지은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난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 게 맞는 걸까.”
어두운 밤을 밝히는 동네책방에서 우리는 모두 말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커다란 그림자가 들어와 우리 사이에 앉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