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공헌감. 이 단어에서 기시감을 느낀 이유
개인심리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알프레드 아들러. 그의 심리학을 근간으로 한 책을 읽었다.
기시미 이치로의 『일과 인생』. 이 책의 키워드를 하나 꼽자면 '공헌감'.
잘 쓰지 않았던 단어가 왜 이렇게 익숙한 걸까. '공헌감'에 푹 빠져 사회 초년생을 보냈던 과거가 떠올랐다.
어떤 일을 할까 고민이 많았던 20대 후반, 사회적기업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콘텐츠로 엮는 작은 스타트업에 운명처럼 입사했다. 사회적기업의 존재를 알게 되고 이윤 창출과 사회 공익을 동시에 가져다주는 기업이 많다는 사실에 마음이 꿈틀거렸던 시절이었다. 대학교 때 배운 공정무역이 생각나기도 하고, 사회에 일원으로써 '좋은 기업'을 홍보하는 것에 마냥 뿌듯하게 일했던 때였다.
2. 9년이 흘렀고, 조금 더 현실적인 공헌감을 원했다.
과거에는 작은 사회적기업을 알리는 것이 '공헌감' 있는 유일한 길이라 확신했다면, 이젠 꼭 그렇지도 않다는 걸 알게 된 경력직. 사회적기업과는 멀어졌지만 브랜드가 고객에게 실제로 어떤 가치를 제공하는가, 고객의 삶을 얼마나 바꾸는가에 현실적인 베네핏에 더 관심이 많아졌다. 사회적기업이라고 해서, 이윤 없이 사업을 운영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기업과 단체가 겉과 속이 일치하지는 않다는 걸 알게 되고 더 그렇게 되었던 것 같다.
이제는 '세상에 꼭 필요한 브랜드'를 기획하고 서포트하는 일. 그것이 나의 일이 되었다. 브랜드가 차고 넘쳐나는 시대에 '세상에 꼭 필요한 브랜드'가 어디 있냐며 반문할 수 있지만 내가 일하는 브랜드가 진심으로 세상에 꼭 필요한 브랜드가 되길 희망하며 일하고 있다. 대행사를 거치며 수많은 브랜드가 쓰레기를 과하게 배출한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꼈기 때문이고, 단순 과소비를 부추기는 것에 현타를 느꼈기 때문이다. 모두가 퍼스널 브랜딩을 외치는 시대, 창업이 즐비하지만 세상에 꼭 필요한 제품/서비스인가는 브랜드의 시작부터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그것이 내가 정의하는 '공헌감'에 가까웠다.
3. 그러나 생각해보면, 공헌감은 사소한 것으로부터 흔들렸다.
공헌감이 향하는 가장 중요한 대상은 1)고객, 2)동료여야 하는데 일의 기준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물음표가 동동 떠다닐 때가 있다. 이 책에도 나온 인간관계의 괴로움이다. 천성이 싸우는 걸 싫어하고, 둥글둥글 지내는 걸 선호하다보니 최근 회사에서 겪는 일들이 쉽지 않았다. 최근 설 연휴를 앞두고 가장 의지하던 팀원 퇴사 소식을 듣고 더 마음이 좋지 않았다. 서로 힘이 되어주던 팀원들이 하나둘 퇴사할 때마다 에너지가 흩어지는 느낌. 같이 부둥켜 안고 잘 헤쳐나가려고 했는데, 그게 몇 번이고 좌절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 끝에 결국 다들 퇴사하는 걸 보니 이걸 견디고자 했던 내가 잘못된 것인가. 아니면 나는 무얼 견디고 있는 걸까. 인간관계에 대한 물음표가 회사생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에너지 뱀파이어가 된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4. 내 안에 지금 '공헌감'이 살아있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일하고 있는가?
신발을 만드는 사람은 '신발을 만든다'는 '행동'을 통해 공동체에 유익한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공공에 도움이 된다는 감각', 즉 '공헌감'을 느낌으로써 '열등감을 줄이'고 자신이 '가치 있다'고 느낄 수 있다.
기시미 이치로, 『일과 인생』
곧 인간은 누구나 여러 가지 원인으로 열등감을 느끼고 있으며,이를 보상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그 사람의 생활양식이 형성되어가므로, 만일 보상될 수 없는 열등감이나 과도하게 보상된 열등감이 있으면 인격의 왜곡이 생긴다고 생각하여 이를 바로잡기 위한 재교육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알프레드 아들러, 나무위키 소개
책 내용에서 경쟁 사회에서의 열등감은 인정 욕구로 이어지고, 상사도 부하 직원도 '공헌감'보다 서로에게 인정받기 위해 아둥바둥 회사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요즘 겪고 있는 일을 보는 느낌이라 도움이 되었다. 문제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와보자. 정말 그 인간관계가 그렇게 큰 문제일까? (큰 문제긴 했다.) 그러나 스스로 묻고 싶은 것은 아들러가 말하는 그 '공헌감'의 관점에서 내가 다시 태도를 점검하고 집중할 것에 집중한다면 어떨까?
아들러는 노동의 분업은 인류를 행복하게 만드는 버팀목이라 말한다. 인간이 노동을 통해 '협력하는 법'을 배우기 때문이라고. 아들러가 일에서 '공헌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결국 열등감이 줄고, 공헌감을 더 많이 느끼는 순간이 곧 자신이 스스로 '가치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일을 하며 인간관계로 용기를 갖고 뛰어들게 되는데 그 안에서 부딪히고 협력하며 '기쁨'을 느낀다. 이러나저러나 일은 결국 단순 돈벌이라기 보다, 자신 자신을 위한 것이라 말한다. 매슬로우의 인간 욕구가 생각나는 대목으로 200% 동의한다. (6단계 자기 초월의 욕구(봉사)와도 관련이 있어보인다.)
이를 내 상황에 다시 대입해보자면, 그렇게 최악은 아니다.
여전히 내가 맡는 일을 통해 공헌감을 느끼고 있는가?
인간관계에 대한 문제로 불씨가 하나둘 꺼지긴 했지만, 여전히 내 안에 이 곳에서 경험해보고 싶은 것들이 남아있다. 그렇다면 작게 남은 불씨를 잘 지켜가며, 나의 태도를 바로 세워 올바른 방향을 보게 하고 싶다.
5. 인정받기 위해 일하는가 vs 공헌감을 느끼며 일하는가
공헌감은 스스로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타자의 평가나 인정은 필요가 없다.
더군다나 내가 인정받아야 할 대상은 고객이어야 한다. 그 다음은 내가 존경하는 리더와 나 자신.
스스로 최선을 다하고, 당당한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단, 사회는 냉정한 프로의 세계이므로 전문가가 되고 싶다면 언제나 고객을 향한 공헌감이 1순위여야 한다는 걸 기억하자. 이 책을 읽으며 본질적으로 '일'에 대한 관점을 재정의 하고, 태도를 한 번 더 세워보기로 한다.
6. 일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삶에 대하여
언제부턴가 일로 나를 정의하지 않으면, 꽤 불안한 삶을 살았던 것 같다. 25년이 되어서야 나의 7년치 커리어를 스스로 가뿐히 정리하고 집중하며 일하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이 책에서 말한 것처럼, 일을 하지 못하게 되거나 일을 하지 않는 나의 시간 속에서도 충분히 내 삶이 만족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하는 나의 자아만 100으로 채우지 말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별거 아닌 일들로 한바탕 웃어대고, 길거리에 핀 들꽃을 바라보는 여유를 갖고, 새로운 세상을 늘 여행하며 호기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 진정한 풍요가 무엇인가 계속 사유하며 이 책을 다시 곱씹어봐야겠다. 일단은 일터에서 진짜 중요한 것에 에너지를 쓸 수 있도록 건강한 생각의 씨앗을 하나둘 심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