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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모니블렌더 Feb 11. 2023

[첫 모녀유럽여행] #1.엄마가 갑자기 떠나자고 했다.

딸, 엄마 한 달 동안 일 쉬게 되었어


1월 1일, 새해가 밝자마자 엄마로부터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아이돌봄을 하고 있기 때문에, 순간 무슨 일이 생겼나 철렁했다.

들어보니 필수 교육 데드라인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 쉬게 되었단다.



옛날 같으면 '아니, 그걸 왜 제대로 못 챙겼지' 싶겠지만

실무자를 관리하는 담당자의 잘못도 있었고 점점 나이드는 엄마를 감안하니

"그래 그럴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말인데, 이참에 너랑 같이 스위스 여행 가는 건 어떨까?"


응? 또잉?

엄마 워워 잠시만여

스토리가 이렇게 흘러간다고요?

너무 너무 너무 너무x99999999 갑작스러워서

엄마가 정확히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내 인생에 언제 또 이런 긴 쉼이 있겠니"

"다시 일하면 길게 시간 내기 어렵다"

"엄마 평생 소원인 알프스 산맥을 꼭 보고싶다"

"30대인 딸래미와 언젠가 가기로 했던 스위스를 간다면, 지금인 것 같다"

"요즘 주변에 여유있는 엄마들은 딸 시집 전에 한 번씩 이렇게 여행 간다더라"

대략 이런 내용의 대화를 나눴던 것 같다.



그래, 엄마의 평생 버킷리스트가 <스위스 여행>인 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차곡차곡 같이 적금모아 가기로 한 여행이었고,

1-2년 안에 언젠가 가겠지 라고 생각했던 여행도 맞다.

근데 이렇게 갑자기 떠나는 건.............아니지

무리였다.



설이 코 앞인데, 진짜 이렇게 갑자기 떠난다고?


갑자기 떠나면 3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1) 돈

갑작스러운 거금 지출로 적금을 깨거나, 신카의 힘을 빌려야 함


2) 여행 기간

아직 아무것도 모름, 적절한 여행 기간이 있을까?


2) 업무

대표님, 팀원들에게 이걸 어떻게 말하지, 긴 휴가로 업무 차질



돈. 원래 즉흥적으로 가는 여행은 비싸다.

공급과 수요의 원칙으로 대한민국의 2대 명절인 '설'이 끼어있기 때문에 아마 더 비쌀거다.

(*실제로 300~500 선까지 가는 패키지가 많았음)



기간. 적당한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코스는 어떻게 가야 하는지 당장 알아보고 결제해야 한다.

길게 가려면 설 연휴를 껴야하고, 1월 중하순에 떠나야 하순에 돌아올 수 있다.

자유여행은 알아볼 시간도 없으니 오바고. 패키지 경험은 1도 없고.


우선 내 여행 스타일은 캐나다 워홀 전후로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하는데,

한 동네, 도시를 오래보는 걸 좋아한다. 찍는 여행 말고 사는 여행 같아서.

누구나 꿈꾸는 버킷리스트 <유럽여행>, 이왕 큰 돈 내고 가는 <유럽여행>이라면

더더욱 여행답게 자유롭고 느긋하게 떠나고 싶다고 생각하던 나다.



아이러니하지만, 또 다른 버킷리스트 하나는 쿨하고 P스럽게 갑자기 떠나는 여행이다.

여행 유튜버 or 부자가 된 것 마냥 며칠 전 티켓 끊고 떠나는.. 그런 여행.

라멘이 먹고 싶어 일본에 가고, 눈이 보고 싶어 로키 산맥에 가고.(아이해버드림.,,,ㅋㅎ)


모두가 바라는 루트겠지만, 영문과/캐나다워홀/관광경영을 복수전공했던 나는

바깥세계를 꿈꾸게 만드는 <여행>에 꽤 열정이 있는 편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2023년이 되자마자, 내 버킷리스트를 곧바로 이루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마지막으로 업무. 말해 뭐해. 대표님, 팀원들한테 말하기 너무 조심스럽다.

2023년 계획을 짜고 있는 시점이라 더더욱 조심스럽다.

근데 반대로, 중간에 이렇게 길게 뺄 수 있나? 생각하면 또 까마득하다.

설 연휴가 끼어있어 갑작스러운 긴 공백을 앞 뒤로 쓰게 생겼다.

원래 인생이란게 어떻게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 모르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기로 결정했다




1월 2일, 월요일

엄마의 [한 달 강제 휴가]가 최종 확정되었다. 언빌리버블.


1월 3일, 화요일

회사에 말했다. 대표님, 팀원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1월 5일 목요일

서유럽 4개국 12일 해외 패키지를 끊었다.



어쩌자고. 근데 뭐 어쩌라고. 마인드로 가기로 결정했다.

27살에 떠난 캐나다 워홀도 그랬다. 앞뒤 안가리고 결정하고, 알바 3개를 해가며 떠났다.

새해가 시작된 내내 머리 꽁꽁 싸매고 고민했지만


나 개인의 삶을 돌아보니 꽤 괜찮은 결정일 수 있겠다 싶다. 이번 여행도 후회는 절대 없을 것 같다.

물론, 회사 휴가는 눈치밥 조금 먹었지만 휴가 쓰는 것엔 자유로운 회사라 다행이다.

다른 회사 같았으면 아마 불가능 했을 거다.


목표는 하나. 엄마랑 좋은 추억 쌓기.

패키지이기 때문에 자유롭게 뭔가를 한다는 욕심도 내려놓으려 한다.

한 국가를 오래 볼 것인지, 여러 국가를 찍고 다닐 것인지.

이 또한 엄마의 결정을 따르기로 했다.


오바해서 약 서른 번의 회유 과정을 거쳤지만,

이번 여행의 목적은 엄마의 기쁨이다. 떠나면 분명 엄마와 나의 기쁨이 될 거니까. :)



죽어가던 블로그도 다시

일시정지된 유튜브도 다시 해볼거다.

새로운 세상을 많이 담고 느끼고 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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