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에요.

마음이 충만한 미술수업을 꿈꾸며

by 손현선

오늘도 어김없이, 같은 시각에 미술 수업을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유치원생이었는데, 어느새 초등학생이 된 귀여운 아이다. 유치원을 졸업했으니 이제는 어엿한 초등학생이니까 오늘은 아크릴 물감으로 정물화에 도전해 보자고 이야기했다.


사실 평소라면 먼저 아이의 의견을 물어봤겠지만, 오늘은 ‘초등학생’이라는 타이틀이 괜히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래도 다행히 아이는 싫은 내색 없이 “네” 하고 환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렇게 오늘의 정물화 수업이 시작됐다.


평소와는 조금 달리, 오늘 수업은 어느 정도 순서를 갖춘 흐름 속에서 진행됐다. 정물화는 테크닉과 관찰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는 수업이라, 먼저 형태를 잘 잡고, 그 위에 채색을 더하는 식으로 순서가 있었다. 그림은 분명 아이가 스스로 그렸지만, 그 과정 곳곳에는 선생님의 목소리와 지시가 많이 스며들었다.


‘잘’ 그린 그림 한 점이 완성되었다.. 나는 그 그림을 보며 은근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아마 평소보다 조금 더 어려운 수업이었을 텐데, 아이도 자신이 이런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에 분명 기뻐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곧, 나는 중요한 무언가를 간과했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에게 ‘오늘 그림 어땠어? 선생님이 보기에는 너무 잘 그렸어’라고 말을 건넸다. 아이는 머뭇거리더니 ‘제가 원하는 그림이 아니에요’라는 대답을 했다.

그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이가 내 질문에 대답하는 그 짧은 순간, 미안한 감정이 벅차 올라왔다. 그리고 자유롭게 다른 이야기를 담은 그림을 그릴 틈조차 주지 않은 채, 수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던 마음 급한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아직도 어린아이인데, 나는 ‘초등학생’이라는 타이틀에 꽂혀서, 아이를 보는 순간부터 스스로 그 아이를 ‘큰 아이답게’ 대해야 한다고 마음을 굳혀버렸던 것 같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큰 아이답게’라는 말 자체가 모순이다. 나이를 불문하고, 아이는 그저 아이일 뿐인데. 결국 내 초점은 온전히 ‘잘 그린 결과물’에 맞춰져 있었고, 아이는 그 뒤를 조용히 따라왔던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만 초점을 맞추고, 인정욕구에 길들여진 어른들 눈엔 그럴듯한 결과물만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아이는 다르다. 마음 없이 그린 그림은, 많은 아이들에게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다시 생각해 보면, 그 아이는 어쩌면 전혀 다른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요즘 유행하는 귀여운 캐릭터였을 수도 있고, 그저 마음속에서 떠오른 자유로운 무언가였을지도. 그런데 나는 외형에만 집중한 나머지, 그 그림 속에 담기지 못한 아이의 마음을 놓치고 말았다.


아이와 그림을 그리고,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선생님인 나는 ‘좋은 결과’가 만들어지는 흐름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을 아이에게 그대로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는 걸, 나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어른의 마음으로 아이를 이끌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의 작품 활동이 결과에만 초점이 맞춰지기 시작하면, 언젠가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른 채, 남들의 시선만을 의식하며 자라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미술을 오랜 시간 입시처럼 접근하며 살아왔기에, 그 마음이 얼마나 무거운지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더더욱, 아이들만큼은 그런 길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이 글을 쓰며, 아이들을 지도하는 미술 선생님으로서 다시 한번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누가 뭐라고 하든, 아이들이 스스로의 마음을 표현하고, 그 안에서 충만함을 느낄 수 있는 미술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내 마음을 스스로 컨트롤하기 어려울 때도 많다. 가끔은 결과물, 부모님의 기대, 내가 옳다고 믿는 가치, 그리고 아이들의 마음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느낌이 들곤 한다. 그럴 때마다 멈춰 서서 스스로를 알아차리고, 되돌아보고, 이렇게 글로 정리하며 내가 지향하는 가치의 방향으로 다시 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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