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고 허리야
2년 전, 한 6살 아이가 미술학원의 문을 두드렸다. 처음 두세 번은 어색함이 맴돌아, 정해진 커리큘럼을 따라 조심스레 수업을 이어갔다. 보기에는 아이가 잘 따르면서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후 긴장이 풀리자, 쭈뼛쭈뼛 들어오던 아이는 문을 힘차게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 대뜸 "만들고 싶은 거 다 만들 수 있다고 해서 여기 학원으로 왔는데 왜 그림만 그려요?"라며 불만을 하나둘씩 이야기했다.
‘계속하고 싶은 걸 만들 날만 기다렸구나.’ 미술학원이 편해졌다니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아이가 귀엽기도 하고 대견하게 느껴졌다. “그래? 그럼 어떤 걸 만들고 싶니?”라고 아이에게 물었다. “칼이랑 방패를 만들고 싶어요!” 아이의 대답에 웃음이 났다. 역시 6살 남자아이답다. 마침 재료도 넉넉했고, 한산한 시간이라 마음껏 만들기에 좋았다. 아이는 신중하게 칼과 방패를 디자인하고 설계한 뒤, 뚝딱뚝딱 손을 움직였다. 그렇게 어느새 제법 그럴듯한 작품이 완성되었다. 마지막까지 작품을 바라보던 아이는 드디어 만족한 듯 흐뭇한 미소를 짓고, 학원 문을 열고 나섰다.
그 후로도 아이는 수업에 들어오자마자 보따리를 풀 듯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꺼내 놓았다. 우리는 함께 어떻게 만들면 좋을지 의논한 뒤, 그림을 그리거나 손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들어 갔다. 가끔 욕심이 커서 열심히 하다가도 생각보다 어렵다고 느끼면, “에구, 허리야…” 하며 허리를 토닥이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그 장면을 떠올리기만 해도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고, 또다시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왔다. 그렇게 계절이 두 번 바뀌는 사이, 아이는 7살이 되고, 8살이 되고, 어느덧 9살이 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아이의 관심사도 변해 갔다. 한때는 용과 같은 캐릭터를 그리더니, 요즘은 인물화에 푹 빠져 좋아하는 연예인의 얼굴을 그리고 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만약 6살,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 인물화를 그리자고 했다면, 아이는 “하고 싶은 걸 하려고 왔는데, 왜 이걸 해야 해요?”라며 투덜댔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스스로 그리고 싶어 선택한 그림 앞에서는 언제나 책임을 지려는 모습이 참 대견하고도 놀랍다. 어려운 그림에도 포기하지 않고, “에구, 허리야…” 하면서도 끝까지 완성해 내는 아이.
“이걸 그려 보자, 이렇게 해 보자”라는 설득 없이도 스스로 그리고 싶은 걸 찾아 몰두하는 모습은, 미술 선생님의 입장에서 보면 그저 감동적이다. 그리고 앞으로 이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며, 어떤 것에 깊이 몰입해 성장해 나갈지 기대되지 않을 수 없다.
아동 교육에서 흔히 듣는 말 중 하나가, 아이에게 미리 습관을 들이지 않으면 나중에는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또, 자유롭게 두면 결국 흐트러진다고들 한다. 하지만 자유와 선택권을 주었을 때, 굳이 다그치거나 지시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스스로 그림에 애착을 가지며 책임감을 느낀다. 아까 아이와 같이 지도하는 동안, 나는 많이 보아왔다. 아이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온 마음을 다해 몰입하며 작품을 완성해 나가는 모습을. 그리고 그 순간들이야말로 가장 빛나는 배움의 과정임을 실감한다. 아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 선택한 것에 대한 힘을 얻어, 끝까지 완성해 내려는 끈기를 보인다.
자유를 주었을 때 오히려 더 열정적으로 몰입하는 아이들을 보면, 다른 생각이 든다. 습관을 강요하며 자유를 억압하기보다는, 아이를 교육할 때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렇기에 최근에 든 생각은 ‘책임을 지는 순간’ 아니면 아이가 ‘애쓰는 순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 선생님으로서 내 역할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스스로 원하는 것을 찾고 깊이 몰두하는 아이들을 바라볼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