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이다

마음이 보이는 낙서

by 손현선

우리 학원은 자그마하고 소박한 교습소지만, 나름의 특징이 있다면 수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아이들과 그날의 주제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같은 시간에 모인 아이들이라 해도 모두 같은 수업을 똑같이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각자 조금씩 다른 것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모습은 마치 작은 동네 커피숍 같기도 하다. 획일적인 음료가 아닌, 각자의 취향대로 주문한 다양한 음료가 테이블마다 놓인 커피숍 풍경처럼, 아이들 역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수업에 참여한다. 어떤 아이는 ‘오늘의 커피’처럼 준비된 수업을 기분 좋게 즐기고, 어떤 아이는 자신에게 맞게 음료를 커스터마이징 하듯, 수업 내용과 재료를 바꾸어 자기 주도적으로 만들어간다. 오랜 시간 한 자리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며 교습소를 운영해 왔기에, 자연스럽고 다양한 방식의 수업이 가능해진 것 같다.


목요일 오후는 유독 그런 개성이 도드라지는 날이다. 하고 싶은 것이 뚜렷한 고학년 두 명의 아이들이 찾아온다. 그 둘은 언제나 작은 종이를 꺼내 무언가를 끄적이며 수업을 시작한다. 언뜻 보면 낙서를 하며 노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끄적임은 더 큰 무언가를 위한 첫걸음이다.


그 끄적임은 단순한 낙서가 아니다. 원하는 작품을 떠올리고, 그리기 위한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아이디어를 스케치하듯 종이 한 귀퉁이에 적어두고, 그걸 토대로 작업을 이어간다. 작업 중간중간에도 이런 낙서는 계속된다.

가끔은 한 작품에 오래 집중한 뒤, 아이 스스로 “잠깐 머리를 식히고 싶어요”라며 조용히 작은 종이에 끄적이기 시작한다. 그러다 “선생님!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하며 다시 작업을 이어가기도 하고, “이건 다음에 꼭 해볼래요”라며 아이디어를 기약한 채 수업을 마무리하기도 한다.


아이에게 낙서는 쉼표가 아니라, 또 다른 시작점이다. 언뜻 보면 무의미해 보이는 끄적거림은, 사실 창작의 고뇌이자 아이디어가 움트는 자리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창의성’은 완성도나 성취와는 조금 다른 곳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획일화된 과정과 완성도에 집중하면 분명 더 효율적일 수 있다.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끄적거리고 굼뜬 시간 없이 일정한 퀄리티의 작품을 빠르게, 많이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순수한 ‘나의 생각’과 ‘의도’에서 시작된 작업에는, 그 방식에서만 드러나는 고유한 독창성이 있다. 그 과정은 때로 더디고, 어른들 눈에는 딴짓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바로 그 ‘딴짓 같은 시간’ 속에서, 진짜 창의성이 움트고, 비록 많지는 않더라도 훨씬 더 풍부한 것들이 탄생할 수 있다.


아이들은 모두 끄적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물론, 끄적임이나 자유로운 수업만이 절대적으로 좋다는 건 아니다. ‘오늘의 수업’처럼 정해진 흐름 속에서 얻어지는 안정감도 분명히 필요하다. 중요한 건 균형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느리고 자유로운 수업이 종종 “성과가 없다”, “대체 뭘 배우고 온 거냐”는 평가를 받으며 등한시된다. 그럴수록 우리는 다시 한번, 편안하고 볼품없어 보이는 그 끄적임이 아이에게 얼마나 중요한 시간인지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그저 낙서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무한한 가능성과 여유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이 필요하다.


언제나 아이들의 끄적임이 멈추지 않기를, 천천히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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