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나무 가지에서

코알라가 만든 적 없는 이미지

by 경쾌늘보


외나무 가지에서


동네 산책로에 들어서자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습니다. 여러 해 그 길을 다녔지만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소리. 사람의 소리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습니다.

"어떤 여자들이 싸우나?"

"혹시 누가 다친 걸까?"

비명 소리는 제법 간절했기에 약간의 두려움을 무릅쓰고 천천히 가보았습니다.


사람은 없었습니다.

대신, 발견한 것은 한 나뭇가지에 있는 두 마리의 코알라.

다 큰 두 마리가 함께 있는 장면도 처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친구나 가족으로로 공존하는 것이 아니었어요. 외나무 가지에서 만난 앙숙, 라이벌이었습니다.

그토록 앙칼진 목소리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동물들이 코알라라니.



그들은 한 나무에 두 코알라가 공존할 수 없다는 질서를 소리로 그리고 몸으로 보여줍니다. 그 두 마리는 우연히 혹은 의도적으로 영역을 침범했겠지요. 오직 두 마리가 공존하는 때는 엄마와 아기 코알라만이 가능하죠.


조용하고 순한 이미지의 코알라. 짝짓기 시즌의 괴상한 낮고 굵은 목소리를 내는 우스꽝스러운 반전이 있었지만, 또 한 번의 거대한 반전을 맞닥뜨렸습니다. 생존의 위협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야생의 거친 순간이 나옵니다. 코알라들이 사이좋게 산다는 것 또한 사람이 기대하는 이미지였나 봅니다.



그저 순하다는 오해


생각해 보면 코알라가 순해 보이는 이미지를 갖게 된 것에, 코알라의 의지가 개입된 적은 없습니다. 그 이미지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장면을 골라낸 결과일 뿐, 코알라가 스스로 만든 것은 아니었죠.

낮 동안 나무에서 움직이지 않으며 내내 자는 모습만으로 사람들은 ‘조용한 동물’이라는 하나의 대표 이미지를 만들었죠. 눈에 띄지 않거나 보지 않은 장면들이 있다는 사실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호주가 만들어낸 것과 무관하게, 코알라도 살아내야 할 거친 야생의 삶이 있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느린 몸도 빠르게 써야 했고, 소리는 더 앙칼지고 커야 했고, 나무 위에 오르기 위한 발톱을 사용해 상대를 밀어내야 하기도 합니다. 나무 위에서 벌어지는 몸싸움은 지켜보기 아찔할 정도로 거칠었습니다. 승자가 패자가 분명 정해지고 패자는 물러나 떠나야 하는 싸움입니다.


그 순간의 코알라는 우리가 아는 이미지와 닮지 않았죠. 귀여움은 도움이 되지 않았고, 고요함은 보호막이 되지 않았습니다. 필요한 것은 타이밍, 그리고 물러서지 않음이었겠죠. 에너지를 아껴야 하는 동물이기에, 싸움이 오래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언제 멈춰야 하는지도 정확히 알고 있죠.



우리가 기대받는 것


인간도 종종,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이미지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봅니다.
좋은 사람으로 보이길 요구받거나, 문제없어 보이길 기대 받기도 합니다. 남의 눈과 시선으로 만들어 가는 이미지에 갇혀 살았던 순간은 없는지 지난 시간 속에서 떠올려 봅니다.


그리고 현실에서 위협을 느낄 때, 우리는 종종 그 이미지와 다른 선택을 하며 살아갑니다. 필요하다면 관계를 밀어내고, 자리를 차지하고, 상처를 감수하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삶에 치열한 구석이 있는 것은 코알라나 사람이나 같은가 봅니다. 이 모습도 저 모습도 모두 ‘자신’임을보여주고 받아들이며, 타인의 뜻밖의 모습에도 이해가 오가고 받아들이는 개인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사이좋게 산다는 말


코알라들의 격한 싸움장면 목격담을 돌아와 딸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입니다.


"코알라가?! 왜?"


"코알라도 우리집 강아지처럼 영역 표시 동물이래. 자신의 영역에 다른 이가 들어오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 동물이어서 영역을 위해 싸우는 거야. 살아남기 위해."


"같이 살면 좋을텐데."


"그러게. 다들 자기 방식으로 사는 거겠지.

조용해 보여도, 다들 나름의 치열한 싸움이 있고.

그래도 우리는 사람이니까, 사이좋게 살자."


코알라야 이 글로 너의 이미지를 깼다면 미안해. 그렇지만 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너의 거친 면까지도 이해할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