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무해한 이웃
"바쁘더라도 최소 일주일에 한 번은 코알라를 만나러 갑니다."
유명한 사람들이 인터뷰에서 종종 받는 질문,
"힐링 타임으로 하는 것이 있나요?"
제가 그런 질문을 받는 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 물어본다면 그렇게 대답할 것 같아요.
나의 무해한 이웃, 코알라를 만나는 것은
무례한 사람들로부터,
무연한 사건들로부터,
잠시 벗어나는
무상의 힐링 타임이 되어주었습니다.
같은 장소를 반복적으로 산책하다 보니
이제는 동네 코알라들의 번지수와 신상 파악 정도가가능하다 할까요.
코알라 힐링 속으로
꽃나무로 숨겨진 좁은 산책로를 따라 들어가면
자연보호 지역이 나옵니다.
그 길을 따라 오른쪽 산 쪽으로 가지 않고
왼쪽 산책로로 걸어갑니다.
막 독립한 듯 보이는 어린 코알라,
두 마리 새끼 코알라,
그리고 코알라의 죽음까지.
발자국 소리에 눈을 뜨는 코알라도 있고,
“안녕”이라는 인사에 고개를 따라 움직이는 코알라도 있어요.
그대로 다시 잠에 빠져드는 코알라도,
오물오물 식사에만 집중하는 코알라도 있습니다.
나무 위로 오르거나,
다른 나무로 이동하기 위해 걷는 코알라,
때로는 뛰어가기까지 하는 코알라.
코알라 세계를 듬뿍 선사한 그 길.
그들의 모든 느린 삶과 움직임을
보고 듣고 경험할 수 있는 그 길을 저는 참으로 좋아합니다.
비탈길 끝 대감댁
그중 비탈길 끝에 있는 커다란 나무에서는 늘 걸음을 멈춥니다.
경사가 완만하여 달리기 좋은 길이지만
달리기 중이라 하더라도 다리에 브레이크를 겁니다.
코알라가 사는 나무 중 동네에서는 가장 큰 나무,
그곳에는 코알라가 있어요.
그 큰 집을 혼자 차지하고 사는 그 코알라를 저는 "코알라 대감"이라 부르며,
대감님이 사는 나무를 "대감집"이라 합니다.
멈추어 코알라 대감 (줄여서 코대감)을 부릅니다.
반가운 마음에 큰소리로 인사합니다.
"코대감~"
자신이 코대감이라 불리는 이유를 알 리 없는 코알라지만,
소리에 반응하고 나무 아래 사람을 물끄러미 쳐다봅니다.
그러면 저는 있어서 다행이다 생각합니다.
어느 땐 아무리 봐도 안보입니다.
그럴 땐 가끔 한줄기 가지만 남아있는 옆나무에서 발견하기도 해요.
저는 "너 미니멀리스트?"라고 마음대로 생각하거나,
혹은 옆 소나무에서 발견할 때는 "코대감, 마실 중"이라고 혼자 극본을 씁니다.
그런데 이 나무에도 옆 나무에도 어느 곳에서도 안 보이면
괜스레 서운한 마음과 걱정스러운 마음까지 생깁니다.
큰 나무 아래 서성이는 그런 자신을 보며 의아하기도 합니다.
"나는 왜 이렇게 코알라에게 정이 든 걸까."
일주일에 뭔가 빠진 루틴이 있다 싶으면
코알라를 보러 가지 않은 것이죠.
퇴근 후 산책을 나서는 이유에
물론 건강을 위한 것도 있겠지만
분명 코알라들의 안녕을 확인하기 위함이기도 하죠.
그날 저녁도 코대감 양반집에 계시나 궁금하여 나무로 다가갔습니다.
코대감 발견. 예스.
그런데 코대감과 먼 가지에 다른 코알라가 보입니다.
"오호, 한 나무에 두 마리가 사이좋게 공존하다니 착하네."
하는 순간 다른 가지에서 한 마리가 더 보입니다.
이게 무슨 일이지? 하며 큰 나무를 멀리 바라봤는데,
세상에 저 멀리 털뭉치 하나가 또 보입니다.
"코대감~ 공유주택 사업 하는 거야?
아님 오늘 대감댁 잔치날이야?"
이건 코알라계에서는 세상에 이런 일이! 정도의 빅뉴스라,
집에서 흑백요리사 시청 중인 가족들에게 들뜬 목소리로 전화를 합니다.
"내가 뭘 봤는지 알아? 한 나무에 코알라가 4마리야~!"
"어 그래~ 잘 보고 들어와."
그게 그렇게 흥분할 일인가 싶은 듯 대답합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의 격앙이 닿지 않는다는 것을.
강요하고픈 마음은 없습니다.
뭐든 자연스럽게, 각자의 취향을 존중해 주며 살아야죠.
무해한 소확행, 코알라
네마리 코알라들의 동거는
고스란히 저만의 흥분으로 남습니다.
자연 속 어느 야생 동물에게 관심을 두고,
혼자 감격하는 순간들을 갖게 될 줄은
예전의 저는 미처 몰랐습니다.
그들은 혼자 산책길에 만나도 위협적이지 않고,
무례하지도 무력적이지도 않습니다.
그저 나무에서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무해한 존재들.
무해함이야말로
도시에서 가장 필요한 태도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무해하게, 서로를 해하지 않으며 자신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사람, 자연, 도시
우리 서로의 무해함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