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알라는 느리다?

선택과 집중의 지혜

by 경쾌늘보


누군가 있다


산책 길에 서걱서걱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립니다.

같은 방향으로 무게감 있는 움직임이 들리면, 등골이 오싹해지며 잠시 멈춰 서게 됩니다.


다행히 곰이나 하이에나 같은 맹수들이 없는 나라입니다.

캥거루라면 가볍고 빠른 움직임일 텐데 이건 누구일까 기다려 보면, 딱 보입니다.


반가운 이웃, 코알라.


한 번은 딸이 지난밤 꾼 꿈을 열심히 이야기해 주며 걷고 있었습니다. 납치가 일어나는 무서운 악몽을 꾸었나 봅니다. 그 순간 전방 나무 기둥 뒤에 누군가 서있다가 인기척에 몸을 황급히 숨겼습니다. 아이는너무 놀라고 무서워하였고, 저도 서늘해졌습니다. 동네 주민 외에 갈 수 없는 그 숲에서, 누군가가 나무뒤에 숨어 있다면 이것은 평범한 사건은 아닐 거라 직감했기 때문이죠.


덩치는 어른 같은데 키가 작은 땅딸한 체구? 나무 뒤에 서있는 그 누군가가 고개를 빼꼼 내밈과 동시에 아이와 저는 허탈하고도 반가운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처럼 나무 뒤에 서있던 헤비급 큰 코알라였습니다. 보통 코알라 몸무게가 15킬로 미만이라는데 그 녀석은 30킬로는 되어 보이고 두 발로 서있으니 키도 제법 커 보여 멀리 서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는 체구였습니다.


당황한 (듯 해보이는) 코알라들은 황급히 가까운 나무로 도망을 갑니다.


코알라는 느리다굽쇼?


코알라는 느리다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무에 매달려 하루 대부분을 자고 늘 졸린 모습이죠. 코알라는 늘 제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람들은 빠른 추측과 단정을 합니다. 코알라는 느린 동물이라고.


그런데 말이죠, 움직여야 할 이유 즉 경계나 생존의 상황에서의 코알라는 생각보다 빠릅니다. 코알라는 빠르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들은 '느리지만은 않다'라는 말이 적합할 것 같습니다.


코알라들의 나무에서의 일상은 먹을 때 외에는 움직이지 않기로 선택한 듯 보입니다. 영양가 적고 독성은 강한 잎을 주식으로 먹기 때문에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선택입니다. 움직임에는 에너지가 많이 들기에에너지를 최소한 아껴둡니다. 태생이기도 하고 전략이기도 하죠.


그러다 움직여야 할 타이밍에는 전력을 다합니다. 제가 본 상황들에서 그들의 동작은 '황급히'라는 부사가 어울릴 정도로요. 생존 본능을 위한 동작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단거리 주자가 됩니다.



선택과 집중


동물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선택과 집중.

사람들은 생각이 많고, 선택과 집중을 위해 또 선택을 해야 하고 시간을 씁니다. 그래도 잘 선택했다는 확신은 시간이 지나 봐야 알 수 있고요. 에너지와 사용할 수 있는 자원들을 아껴두었다 정확히 선택하고 그것에 집중하는 지혜를 따오고 싶어 집니다.

늘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능력이라면,

움직이지 않아도 괜찮다는 확신은 또 다른 능력일 것입니다.

코알라는 그것을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네요.


코알라는 속도가 없는 동물이 아니라,

속도를 낭비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려 보입니다.



나름의 전력질주


오늘도 이른 아침, 귀여운 뒤태를 실룩거리며 천천히 나무와 나무 사이를 걸어가고 있는 코알라.

그러다 사람들의 하이라이트를 받으면 부끄러움에,

황급히 그들의 무대(나무) 뒤로 사라지는 코알라 전력질주.


나름 전력질주인데 남들이 보기엔 여전히 느린 것은

아마도 저와 닮아 있기에 더 눈길이 가나 봅니다.


어기적 뒤뚱뒤뚱, 그들의 뒷모습에 미소의 여운이 사라지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