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김연수_사색적이고 긍정적 운동, 달리기

달리기는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by 경쾌늘보
매일 달린다는 것은 매일 뭔가를 끝낸다는
그 사실에서 기쁨이 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선입견을 깨는 순간


어릴 적, 아니 좀 더 자라서까지도 나는 한국 ‘작가’ 혹은 ‘소설가’에 대한 묘한 선입견이 있었다. 글쓰기 창작을 위해 담배를 꼬박 물고 있거나, 연기가 자욱한 가운데 재떨이가 꽉 차있는 작업실, 고뇌에 찬 가슴을 술로 달랜다거나 하는 사람들. 그 세계는 어딘가 무겁고, 어둡고, 폐쇄적으로 느껴졌다.


그런 내게 ‘달리기를 즐기는 한국 남자 작가’가 있다는 정보는 하나의 인식 전환점이었다.

어쩐지 반가운 그는, 김연수 작가이다.

필력도 필력이거니와 나는 그의 저서들의 제목 만들기 능력은 천재적이다 싶어 개인적으로 늘 감탄하곤 했다.


그의 달리기 사랑은 러너들의 경전이라 불리는 조지쉬언의 <달리기와 존재하기 (Running and Being)> 번역으로까지 이어져 보인다.




문학과 함께 온 달리기


1970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난 김연수는 학창 시절 백일장에서 한 번도 당선된 적이 없다고 한다. 천문학을 공부하고 싶었던 이과 학생이었는 그는 원치 않는 전공인 영문학을 하게 된 헛헛함과 당시 시위가 한창이던 대학시절, 도서관을 도피처 삼아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부정적 감정들을 써내려 가던 것이 글쓰기의 시작이 아닐까 회상한 인터뷰를 보았다.


그 후, 1994년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제3회 작가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동서문학상, 동인문학상, 대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이상문학상까지 휩쓸었다.


소설집 <스무 살>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사월의 미, 칠월의 솔>, <너무나 많은 여름이> 등, 장편소설로는 <7번 국도 Revisited> <사랑이라니, 선영아> <꾿빠이, 이상>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밤은 노래한다> <원더보이>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등등.

산문집으로는 <청춘의 문장들> <여행할 권리> <우리가 보낸 순간> <지지 않는다는 말> <대책 없이 해피엔딩>(공저) 등의 책들로 국내 문학계에서 입지를 단단히 해온 작가이다.


그런 그의 문학만큼이나 오래 이어져온 일이 있다. 바로 달리기이다.



달리기 책 <지지않는다는 말>


나는 (또한 사적으로) 달리기를 시작하려거나, 마라톤을 준비하려는데 막막한 사람들에게 김연수 작가의 <지지않는다는 말>을 추천하고 싶다. 한국에서 달리기를 주제로 한 최초의 산문집 중 하나이다. 작가의 경험과 생각은 한국적 정서와 위트와 맞닿아있다.


그의 다른 저서 <청춘의 문장들>에서도 금강산 마라톤 참가 후기 등 달리기를 이야기들이 있다.

그러니까 김연수 작가에게 달리기는 일관되게, 끈기있게 존재해 온 삶의 자세이다.


그는 말한다.

매일 달린다는 것은 매일 뭔가를 끝낸다는 그 사실에서 기쁨이 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고통과 경험이 혼재하는 가운데,
거기 끝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자발적으로 고통이 아니라 경험을 선택할 때,
그리고 달리기가 끝나고 난 뒤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걸 확인할 때,
그렇게 매일 그 일을 반복할 때,
세세한 부분까지 삶을 만끽하려는 이 넉넉한 활수(무엇인든지 아끼지 않고 시원하게 잘 쓰는 씀씀이)의 상태가 생기는 것이다.

달리기는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시작할 때는 그렇지 않지만, 끝날 때는 반드시 그렇다.



30년 가까운 러닝의 시간


김연수 작가가 <지지 않는다는 말>을 출판한 2012년 당시, 그는 이미 15년 정도 달리기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지금은 그로부터 다시 약 13년이 지났으니 김연수 작가는 약 30년 가까이 달리기를 한 셈이다.


그가 처음 달리기를 시작한 동기는 평범해 보인다. 다니던 출판사를 그만두고 시간이 많아졌고, 할 일 없는 사람 보이기 쉽지 않아 동네 운동장을 서서히 걷고 달려보기 시작했다고 했다. 운동장을 서서히 돌기 시작한 달리기는 결국 몇 번의 풀코스 마라톤 완주로까지 이어졌다.



마음을 만드는 운동


김연수 작가는 달리기를 단순한 운동으로 보지 않는다. 달리기에 관한 그의 문장들을 옮겨본다.


달리기를 통해 내가 깨달은 건 수없이 많다. (중략) 그 중 내 삶에 가장 영향을 끼친 건, 지지않는다는 말이 반드시 '이긴다 ‘라는 뜻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왜 달리느냐에 대한 대답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이러한 인생에 대한 창의적 재해석이 가능하게 만드는 심리상태에 이르게 하는 사색적이고 긍정적인 운동이라고 답하고 싶다.


왜 목표를 정해놓고 달릴 때보다 설렁설렁 달리는 게 내 마음에 더 좋았을까? … 달리기는 몸을 만드는 운동이라기보다 마음을 만드는 운동이라는 걸 서서히 깨닫게 됐다.


아무도 이기지 않았지만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것, 그 사실이 자신의 인생을 바꾸었다고 말한다.



지금을 감각하는 것, 달리기


그의 글에서, 족저근막염 때문에 설렁설렁 뛰면서 ‘자신이 하지 못한 일’이 아니라, ‘지금 한 일들에 집중하는 연습’을 한다고 했다. 과거에 둔 절망과 좌절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두려움과 공포 보는 것이 아닌, ‘지금’이라는 순간의 감각들- 오직 길과 바람과 햇살과 그리고 심장과 근육과 호흡뿐-을 오롯이 느끼는 달리기. 그것은 작가라는 일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김연수 작가의 달리기 루틴


김연수 작가는 새벽에 일어나 전날 메모한 것들을 문장으로 만드는 작업 후, 낮시간에는 글을 쓰고 대게 저녁 6시쯤 달린다고 알려져 있다.


지금 50대 중반인 김 작가의 최근 인터뷰 (2023년 시사In)에서, 그는 이제 일주일에 1- 2번, 많게는 3번 정도 달리고 나머지는 걷는다고 말했다.


달리기가 좋은 것은 몸을 가꾸듯 마음도 가꾸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체력 단련이나 건강을 '피트니스‘라고 부르는데서 알 수 있듯 몸이 말 그대로 내 것처럼 착 달라붙을 때가 있다. 물론 건강할 때다. 그럴 때는 팔다리를 내 마음대로 쓸 수 있어 너무나 신난다. 힘든 훈련을 참고 견디며 달리기를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 역시 내 마음대로 쓰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럴 때 나는 달리기고 싶을 때 달리고, 달리고 싶지 않을 때 달리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된다. 보통 마음은 그 반대로 움직이려 하지만 훈련된 마음은 잘 따라온다. (너무나 많은 여름이 中, 김연수)



김연수 작가의 달리기는 몸을 만들기 위한 운동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 문장들과 함께 해 온 여정이었다.




* 김연수 작가님 이미지 중 러닝 중 혹은 러닝 옷을 입은 사진을 넣고 싶었으나

찾기가 힘들어서 못올리는 것이 아쉽네요^^.




다음 편에는 여자+러너+작가분을 모셔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