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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우무빙 Feb 26. 2023

예술로 한 바퀴 만남 3.

움직임 & 입체 조형

사뿐히 아니고 발도장 꾹꾹 남길 듯한 묵직한 걸음으로 공간을 가로질렀다.

동그란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의자에 긴 막대기를 꽂아 넣었다.


A는 테이프를 바닥에 쭉 붙이며 걸어가 벽까지 연결해 붙인다.

주황색 고깔콘을 양손에 껴고 엉엉금 기어가는 오늘의 선생님이 보인다.

걸어가다 앉은 자세로 바닥을 휘저으며 회전해 가는 B의 모습에서 자신감을 본다.

조용히 걸어가 투박하게 그림 한 장 올려두는 C의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하다.







공간투의 텅 빈 공간에 선생님이 앉아계셨다. 앉아있었음에도 알 수 있는 큰 키. 조막만 한 얼굴. 훈남느낌이 물씬 풍기는 분이셨다.

“오늘 뭐 할지 예상이 안 돼요.”

“뭔가 하고 계실 거예요.”

뭘까. 오늘 뭐 하는 거지.


시작. 모두 일어나란다.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걸음으로 걸어보세요. 멈추지 말고 계속 걸으세요.

걷다가 무엇이든 좋아요. 이 공간에서 나만 발견했을 것 같은 것 한 가지씩 찾아보세요. “


걷다가 보니 바닥에 갈라진 틈이 보였고 그 틈에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졌다.

벽에 있는 점, 이끼 같은 초록 물질 등 정말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발견했더라.


“계속 걸으세요. 한 사람을 정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시야에 그 사람이 머물도록 하면서 걸어보세요. 들키지 마세요. 이제 두 사람을 정해 보세요. 이번에는 세 사람까지.”

눈을 어디 둬야 할지 모르겠는데요.


선생님의 질문. “그 사람은 어때 보이나요?” 나를 생각한 그녀는 다정해 보인다고 이야기했다. 고맙다. 그런데 나는 다정한 사람인가. 그래. 적어도 쌀쌀맞지는 않지.


“계속 걸으세요. 웃지 말고 눈만 마주칩니다.”

“계속 걸으세요. 윙크를 합니다.”

아. 거의 시작부터 펼쳐진 난코스 윙크가 웬 말인가? 난 어려서부터 윙크를 못했다. 귀엽게 찡긋 윙크하는 거랑은 완전 거리가 먼.

어머. 귀엽게 생긴 D는 윙크도 예쁘게 한다. C는 그냥 안 하고 피하시네. 선생님은 선생님이다. 대놓고 윙크 발사. 발사.

역시나 윙크가 그날 가장 어려웠다.


두 번의 만남을 했지만 대화다운 대화를 한번도 나누지 않았던 사람들과 서로 생각하고 눈도장 찍고, 윙크까지 나누었다.


주먹 쥔 손을 마주대 손가락을 천천히 펼치며 물결치듯 움직이기.

한 사람이 다른 사람 머리 위에 손을 대면 한 바퀴 뱅글 돌기.

하이파이브를 하고 점프하기.

멀리서 팔꿈치를 접고 나타나 팔꿈치 도장부터 손가락 등 쪽 도장까지 찍어 하트를 완성하고 손가락부터 서서히 펼치며 헤어지기.

어깨를 퉁 부딪히고 동시에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한 바퀴 돌기.

발을 들어 앞에서 발바닥 쿵 뒤로 돌려 쿵하기.


6가지 인사법 한 가지씩 그리고 동시에 다 같이 하기도 했다. 이렇게 움직이다 보니 웃음소리도 목소리도 들린다.


“우리가 달에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렇게 걷습니다. 느린 움직임으로.”

느리게 움직이며 6가지 인사를 나누다 보니 오! 이거 참 느낌 있네. 그저 천천히 돌며 인사 나누다가 선생님과 다른 몇몇 참여자의 움직임이 다름을 느꼈다. 진짜 무중력 상태에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흐느적보다는 절제된 움직임이다. 그 모습이 가볍고 자유롭게 느껴졌다. 춤추는 느낌.

여전히 다른 사람 의식하고 있구나.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데.


긴 막대기가 하나씩 주어졌다. 막대기가 무엇인지 얘기하며 움직이기. 내가 상상한 것을 몸으로 표현하면 옆에 있는 사람이 맞추기.

신선하다. 이것 참 재미있는 게임 같네.








이제 마지막! 공간 코너에 구멍이 숭숭 뚫린 의자가 하나 놓여있다. 어떤 물건이든 좋으니 가져가서 놓으면 된다. 단, 움직이면서 공간을 가로질러 가야 했다. 한 명씩.

떨리네. 어색해.



오. 입체조형 한 조각을 만났다.

막대기 하나로 두 사람이 연결된다. 선생님의 리드에 따라 함께 돌고 움직이는 그녀의 모습 그 플로우가 예뻐 보였다. 바닥을 훔치듯 회전하며 나가는 B의 모습 속에 자유함이 느껴졌다. 평소 요가를 하면서 정적인 자세도 좋지만 움직임을 좋아하는데 판 깔아주니 막대기 하나 들고 전사 자세를 취하며 한걸음 한 걸음 전진한다. 전사자세라니. 어쩜.


물건들이 쌓이고 꾸며지면서 한 사람씩 나아가 공간 속 작품이 되어보았다. 네 사람이 되면 한 명이 빠져나오고 또 다른 사람이 그 안에 들어가는 방식.

전사자세에 이어 두 번째 요가 자세 나가신다. 파스치모타나사나. 그러니까 앉아서 상체를 숙이는 자세다. 어쩜.

벌써 내 차례야? 또 나간다. 이번엔 벽에 붙었다. 세 번째 자세 등장이요. 심플 삼각자세. 정말 어쩜 그래.

도대체가 생각나는 게 요가 자세뿐이라니. (사진으로 본 남편 말이 벽에 왜 묶였어? 아무도 안 묶어놨는데.)


선생님께서는 우리가 한 오늘의 모든 것이 무용이라고 말씀하셨다. 무용은 나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라 하셨다.







두 시간의 낯선 움직임들 속에서 고지식한 나를 발견한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지.

그러면서도 피하지 않고 못난 윙크도 하고, 앞서나가 움직이고 작품을 만드는 주체자가 된 나를 칭찬해 본다.


두 시간 동안 움직임 가운데 자연스럽게 이끌고 가시는 선생님 노하우에 박수를.

처음으로 단체 사진도 찍고, 연락처도 나누고.

역시 혼자 왔지만 혼자가 아닌 순간이 이렇게 다가왔다.

어색하고도 낯선 움직임의 대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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