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로우무빙 Feb 23. 2023

예술로 한 바퀴 만남 2.

콜라주 & 프로타주 & 스토리

"다음 주 수업 관련해서 작가님께서 이메일을 보낸다고 합니다. 꼭 확인해 주세요."


이메일이 왔다. 그리고 문자도 왔다.



앗. 이 섬세함 무엇?! 같은 시간에 각자의 상황에 맞게 서로 다른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시려는 작가님의 배려다. 각자의 상황이라 함은 자신이 처한 현재의 모습, 심리상태와 같은 외내적인 모든  것을 의미한다.


준비물도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 또는 물건의 사진을 한 장 가져오라는 것이었다.

 강릉 경포해변에서 남편과 함께 환하게 웃으며 찍은 사진을 준비했다. 잇몸을 드러내며 웃는 모습은 내가 좋아하는 남편 매력 포인트다.









작품 구성을 하고 만들 수 있는 다양한 재료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잡지, 화선지, 비치는 종이, 판화에 활용할 넓은 지우개, 못, 나사, 수세미, 갖가지 색칠 도구들과 프로타주를 할 수 있는 조각된 나무들. 책상에 넓게 세팅되어 있었다.

재료 구경도 재미다.

작가님께서는 잔잔한 미소로 맞이해 주셨고 10분 전쯤 도착한 내게 이런저런 말씀을 해주셨다.

내가 너무 육아에 찌들어 있는 듯이 메시지를 보냈나.

육아로 바쁘고 지친 일상 속에서도 가까이 있는 것들을 활용해서 언제든지 간단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방법들을 다양하게 경험해 보고 가길 바라셨다. 여기서 중요한 건 다양하게!


"어떤 거 하고 싶으세요?"

"네?"

"인물 드로잉하고 싶으세요? 아니면 다른 것들 해보고 싶으세요?"

"글쎄요.. 지금 잘 모르겠는데... 사진은 준비해 왔어요."

"아무튼 다양한 걸 해보시면 좋겠어요. 자유롭게."


잘 모르겠지만 작가님은 인물 드로잉 말고 다른 작업을 하길 바라시는 것 같았다. 자유롭게 하라고 하신 것은 마음 가는 대로 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작가님께서 나의 메시지를 보고 느끼신 바로는 내가 자유로워졌으면 하는 마음인 것 같다. 그래서 이것저것 찢고, 찍고, 칠하고, 붙이고, 문지르기를 바라시는 것.



수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작가님께서 말씀하신 것 중 생각나는 것을 정리해 보면 이렇다.


1. 자기 주도성 - 작업을 할 때는 자기 주도적으로 해야 한다. 내가 주체자가 돼야 한다는 뜻이다.

2. 과정의 즐거움 - 없던 것에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 과정안에서 즐거움을 발견하라는 것이다.

3. 결과물 - 그 과정을 지나면 결과물이 나온다.

4. 성취감 - 결과물을 통해 성취감을 경험하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결과물을 만들 것인가?

<나에게 친숙한 언어를 발견할 것>

이 말을 내 맘대로 해석해 보았는데 수많은 재료들 중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편안하고 적절한 것을 발견하고 선택하라는 뜻인 것 같다.


작품은 계획과 우연을 통해 만들어진다. 계획과 우연 이것은 하다 보니 알겠더라.

무엇인가 하고 싶은 걸 할 때에 그것을 못하게 만드는 장애물들을 없애야 한다는 말씀도 하셨다.







"어떤 것을 할지 결정하세요. 인물 드로잉 하실 분들은 이쪽으로 앉으시고, 콜라주 & 프로타주 등 다양하게 해 보실 분들은 이쪽으로 앉으실게요."


나는 어디로 갔을까?

선택의 순간에 잘해보지 않았던 방향으로 가려고 노력하는 요즘이다. 그러나!

계획대로 인물 드로잉을 선택했다. 양심상 내 남편한테 주고 싶은 선물을 완성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있었다. 컬러로 사진 뽑아다 준다고 퇴근까지 일찍 하고 온 그. 잇몸 만개한 사진을 가방 속에 넣어두는 건 안될 일이다. 요즘 부쩍 푸석해지고 축 져진 얼굴, 이른 출근을 하는 그에게 작은 선물을 하고 싶었다.


투명한 종이를 덧대고 연필로 따라 그린다. 그의 머리, 얼굴, 눈썹(사실 눈썹이 거의 없다) 그리고 나의 모습을 라인 따라 쭉쭉.

오일파스텔, 색연필 등을 이용해 색을 칠해본다. 무념무상.

 


색칠한 그와 나를 오리고 붙이며 새로운 종이를 만났다. 어렸을 때 엄마가 부엌에서 탄 냄비 닦을 때 쓰셨던 철 수세미가 도구로 변신했다. 물감을 묻혀 꾹꾹 누르니 오! 느낌 있네.

잡지를 쓰윽 넘겨보다가 신혼여행지였던 호주 지도가 나와 찢어 붙여본다.

아들 왈 : 아빠가 으뜸이같네.


지금! 잘 살고 있고, 늘 지금을 살자라는 마음을 담고 싶어 '지'을 찾아 붙였다.


제법 맘에 든다.


작가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의 작품을 맘껏 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다른 사람 작품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해 주라고 했다. 나도 말문이 안 열리고, 다른 분들도 그랬다.

한분이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네?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무슨 의미인지 설명하네.


"자기 거 설명 안 하셔도 돼요. 다른 분들이 보고 말씀해 주세요."

아.... 그런데 바로 옆에 계신 한 분이 자신의 작품을 들고 또 설명한다.

'아니 왜 안 들으세요?' 아마도... 다음이 자기 차례라는 잠재적 의식 속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안 들렸을 터.


작품 주인의 설명을 듣는 재미도 있었다.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분위기에 나도 이야기했다.


"남편과 제가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드로잉 했어요."


임동현 작가님은 "다 자기 거에만 관심이 많은가 보네."라고 하셨다. 쓴소리는 아니었고, 아쉬움이 담긴 목소리였다.

모든 작품마다 작가의 의도가 있다. 그런데 그 의도를 알기 전에 눈에 보이는 대로 느끼는 것은 관람하는 사람의 특권이고, 작품의 새로운 해석이기도 하다. 임동현 작가님은 그걸 나누길 바랐던 것 같다.


내 눈에 가장 멋졌던 다른분 작품 ㅡ 파랑눈썹 그녀.

예술로 한 바퀴 두 번째 만남을 통해 배운다.


일상에서 소소하게 작품을 만들 수 있는 노하우.

나 자신을 충분히 관찰하고 하고 싶은 일들을 가로막는 장애를 없애는 것의 중요함

그리고 내 것 말고 다른 사람에게도 관심 갖기.


그래. 그러자. 그래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예술로 한 바퀴 만남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