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시각 저녁 6시 42분. 11-2번 버스에서 내렸다. 이미 버스 안에서 내가 갈 그곳 공간투를 보았다.
‘저기구나.’
낯선 공간에서 생판 모르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설레기도 하지만 어색하고도 부담스럽기도 하다.
7시 수업 시작이고 원활한 수업 진행과 예의상 10분 전에는 도착해 있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 하지만 지금 가면 45분 정도 될 텐데.
1분 정도 잠시 고민했을까.
너무 춥다. 그냥 들어가자.
계단을 올라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공간투 대표님 그리고 첫 수업 담당 작가님께서 편안하게 맞아주셨다.
과하게 친절하지 않은 편안함이 맘에 들었다.
10명의 참여자가 책상에 둘러앉았다.
만남 1. 내 몸의 감각을 깨우는 음악이 있는 드로잉(드로잉+음악)
공간투 대표이자 사운드 아티스트 조음사 선생님, 공간투 아트 디렉터이자 시각 예술 작가이신 이은정 선생님께서 리드해 주셨다.
책상 위에 10장의 도화지가 켜켜이 쌓인다. 눈앞에 펼쳐진 연필, 목탄, 오일파스텔, 색연필, 사인펜, 물감 등이 자기를 만져달라고 손짓한다.
조음사에서 만든 음악 10곡을 들려준다. 연주곡이고 곡에 따라 짧은 것은 1분 긴 곡은 10분이 되는 것도 있다고 하셨다.
들려오는 음악에 따라 느껴지는 대로 재료를 고르고, 감정의 흐름대로 선과 점, 도형으로 표현해 보라고 하셨다.
동그라미 두 개만 봐도 눈 같다고 표현하는 우리들. 머릿속으로 이미지화하는 과정은 버리고 즉흥적인 움직임에 따라갈 것, 어린아이가 그리는 난화와 같이 자유롭게 표현해 보라고 하셨다. 내 멋대로 그리고 칠하는 가운데 긴장감은 어느새 서서히 녹아내렸다.
선생님께서 힐링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셔서 어깨에 더 힘 뺄 수 있었던 듯. 그렇게 한 장, 한 장 채워갔다.
바람소리 같기도 하고, 물방울 소리 같기도 하고 사뿐히 가벼웠다가 기분 나쁘게 가라앉은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분명 밝고 경쾌하게 시작되었는데 어떤 곡은 점점 어둡고 괴롭게 만드는 기운이 느껴졌다. 때리는 상상이 되었고, 아팠다. 그래서 인상이 써지고 몸에 힘이 들어갔다. 그만 그리고 싶은데 음악이 왜 이렇게 길어. 이걸 놔? 말어? 내적 갈등이 깊어갈 때쯤 곡이 끝났다.
여기서 질문!
"작가님, 더 이상 그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어도 끝까지 하는 게 좋을까요?"
'더 이상 그리고 싶지 않을 때는 그만해도 되죠?'라고 묻고 싶었다. 이건 뭐 배려도 아니다. 그냥 솔직하게 질문하면 될 것을 애써 긍정적인 마인드 뿜뿜 하며 저렇게 질문하는가.
이은정 작가님께서는 끝까지 해보라고 하셨다. 작가님들께서도 드로잉을 하실 때 여기서 그만할 것인지, 더 할 것인지 사이에서 고민하신다고 했다. 많이 망쳐봐야 한다면서 노래가 끝날 때까지 해보라고. 색과 모양이 레이어드 되는 느낌도 보라고 하셨다. '나 멈추고 싶었는데.' 속으로만 얘기한다.
많이 망쳐봐야 한다.
많이 써봐야 한다.
글쓰기도 그렇다 하였지? 그냥 많이 써보며 쓰레기 배출을 해봐야 보물 같은 글도 만나게 된다는 걸.
크게 숨을 고르고 다음 백지에 또 다른 색을 싣는다.
다행히 곡이 진행될수록 숨이 잘 쉬어졌다.
그런데.
문제는 마지막. 10장의 드로잉 결과물을 보면서 마음에 드는 요소들을 모아 한 장의 그림으로 표현해 보라는 것이다.
의도 없이 생각을 비우고 마음대로 긋고 문지르고 칠할 때는 움직임이 편안했는데 의도를 가지고 하려고 하니 긴장하는 내가 되었다. 이걸 어찌해야 하나.
쓱쓱쓱. 이.상.하.다. 껄껄껄.
썩 마음에 들지 않지만 뭐 괜찮다. 다른 분들의 결과물을 보고 조금 얼굴이 달아오른 것도 사실이다.
내 것을 아무도 평가하지 않는데 그런데도 조금 부끄러웠다. 다행히 집에 와서 사진으로 자꾸 바라보니 나름 정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