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즐거움, 앙상블
바쁘다 바쁜 현대사회에서 스트레스를 주는 것들은 수없이 많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부분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문제로 받는 스트레스가 클 것이다. 사실 업무 자체는 할만하고 참으려면 참을 수 있는데 얄미운 옆자리 동료, 도움 안 되는 상사, 방해만 되는 관리자, 말이 안 통하는 민원인들이 진짜 처리할 업무 같이 느껴진다. 일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그럭저럭 견딜만하다? 그럼 늘 똑같은 잔소리로 싸우는 가족, 복장 터지기 하는 연인, 만나면 속 긁는 소리만 하는 친구, 왜 이렇게 시끄러운지 이해가 안 되는 이웃주민이 스트레스다. 진짜 운수 나쁜 날은 이 모든 게 어우러져 하루 종일 불협화음을 듣는 것 같이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저녁에는 어쩌면 내가 화음을 깨트리는 잘못된 음표 하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사람으로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회복한다고 했던가. 억지 부리는 상사 때문에 괴로운 마음은 친구에게 털어놓고, 가족의 말 한마디에 받은 상처는 우연히 들린 카페 직원의 친절에 위로받기도 한다. 그리고 내가 한 주 동안 마주친 사람들에게 받은 스트레스는 함께 연습해 주는 사람들을 통해 해소한다. 도통 상식과 원칙이 통하지 않는 민원인때문에 모든 걸 던져버리고 싶었지만, 같은 곡을 완성하기 위해 집중하는 사람들에게 함께 노력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낀다. 사사건건 트집 잡는 상사 때문에 다 엎어버리고 싶었지만, 내가 박자를 놓쳐도 계속 연주를 이어가 주는 옆사람 덕분에 다시 집중할 수 있다. 자꾸 관심도 없는 자기 자랑만 하는 친구 때문에 진이 빠지다가도 지난주보다 더 예쁜 소리를 내는 사람들 덕분에 다시 에너지를 얻는다.
취미로 만나게 된 사람들의 관계는 묘하다. 예전부터 알던 친구보다 예의를 차려야 하지만, 그 친구에게는 못할 얘기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다. 직장에서 오며 가며 어색하게 인사하는 동료들보다는 친밀하지만, 섣불리 대화주제를 잘못 꺼냈다 실례가 될까 고르고 골라 말을 꺼내기도 한다. 어딘가 애매한 친밀한 관계지만 확실한 건 내가 이 사람들과 함께 연주하는 게 즐겁다는 거다. 함께 연주하는 시간은 내가 저 바이올린보다 멋진 소리를 내겠다는 야심이 아니라, 저렇게 멋진 바이올린 소리에 어울리는 소리를 내고 싶다는 의욕을 만들어준다. 같은 아마추어이니 틀렸을 때도 잠깐 마음이 덜컹할 뿐 금세 잊어버리게 된다. 합주가 어려웠던 날은 같이 고충을 얘기하며 가는 길에 털어버린다. 성인이 된 이후로 인간관계에 새로운 카테고리가 만들 일이 얼마나 있을까.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길 바라며, 이번 주 합주를 위해 오늘은 퇴근하고 연습실에 들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