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미션, 우리 선생님이 이 글을 읽지 않기를
1. 사실 나는 아직도 CDEFGAB 이름이 헷갈린다. 대부분 선생님들은 레슨시간에 영어 계이름을 쓴다. 그럴때 마다 나는 머릿속으로 '도가 C니까, F는 네 번째인 파'라고 빠르게 숫자를 센다. 하지만 절대 내 악보에 한글로 '파'라고 쓰지 않고 'F'라고 쓴다. 왜냐고? 그냥 그게 더 있어보이니까.
2. 사실 오늘 일은 하나도 안바빴다. 다음주는 출근 안하는 날도 있다. 하지만 레슨 선생님은 내가 오늘 일이 좀 많았고, 다음주도 주중에는 시간이 안되는줄 아신다. 세살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어렸을 때 학습지 숨기던 버릇, 학교다닐 때 야자 튄 나쁜 버릇이 지금도 나온다.
3. 사실 지금 연습하는 곡은 내 스타일이 아니다. 당연히 명곡이고 훌륭한 곡이지만 난 다른 곡이 더 좋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곡은 내 수준에서는 사실 불가능한 곡이란걸 안다. 내 취향은 아니지만 이 난관을 넘어야 원하는걸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그냥 시키는 것만 간신히 할 뿐. 지금 배우는 곡도 자꾸 하다보면 익숙해지고 좋아지겠지 뭐.
4. 사실 나는 아직도 내 파트의 리듬을 정확하게 이해 못했다. 4박자로 세든, 2박자로 세든 둘 다 모르겠다. 쿵 소리를 듣고 나오라는데 쿵 소리를 못듣겠다. 하지만 직장인 10년차 눈치는 또 있기 때문에 얼레벌레 다른 파트와 맞추긴 한다. 선생님은 이제 이해를 한 것 같다고 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반은 알고 반은 모른다. 혼자 하면 틀리지만 다른 파트와 같이 하면 틀리진 않는 요상한 상태.
5. 사실 저번주에는 내가 들어도 내 소리가 너무 안예쁘고 답답해서 연습을 평소보다 더 했다. 분명히 연습할때는 나아진 줄 알았는데, 막상 다 같이 연습할때는 지난주랑 똑같았다. 제대로 소리가 안나오는 음은 여전히 불안하고, 헷갈렸던 리듬은 아직도 헷갈리고. 그래서 쉬는 시간에 다른 사람들이 연습했냐고 물어봤지만 바빠서 못했다고 답했다. 왜 내가 나를 창피해 해야하는지. 그러니 이번주는 꼭 연습을 가야겠다. 그리고 당당하게 저 연습 하고 왔잖아요, 라고 말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