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말고 같이, 솔로보다는 투티
취미 연주자의 최종 목표는 제각각 다르겠지만 대부분 내가 좋아하는 곡을 멋지게 연주하고 싶다, 시간이 날 때마다 자유롭게 연주하고 싶다 정도를 목표로 레슨을 받고 연습을 할거다. 나 역시도 시작은 멋있게 연주해보겠어! 였지만 악기를 배우면서 실력이 야금야금 늘며 그 방향이 조금 바뀌었다. 이제는 혼자 말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연주하는게 즐겁고, 앞으로도 계속 같이 연주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싶다로 목표가 업그레이드 된 것이다. 악기는 못바꿔도 마음가짐은 자유롭게 바꿀 수 있잖아요?
처음 악기를 배울 땐 당연히 1:1 레슨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나는 악기를 사고 나서야 플루트가 세 부분으로 나뉘어 이걸 조립해야 한다는걸 안 무지랭이였기 때문에 더더욱 1:1 레슨이 필요했다. 그리고 나처럼 한 번도 악기를 배워본적 없는 사람들은 0에서 시작해 하나씩 쌓아가는게 실시간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혼자 하는 레슨이든 연습이든 지루할 틈이 없다. 처음 레슨에서는 플루트 헤드만 들고 바람 부는걸 했는데 한달 뒤에는 완전한 악기로 동요 한 곡을 부는 비약적인 발전에 매 순간이 행복하고 음악으로 충만할 수 밖에. 그러나 이 충만함은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옅어지고 유독 내가 안되는 부분을 만날 때마다 급격히 사라지게 된다. 내가 악기까지 챙겨서 출근했다 바로 레슨을 왔는데 이 손가락이 안된다고? 분명히 주말에 연습 했는데 왜 이소리가 안나는데? 나는 어차피 전문 연주자가 아닌데 이걸 꼭 극복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이런 질문이 마음속에 생겨나며 악기 배우는걸 관둘 위기가 왔을때,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 나의 경우는 그 답이 바로 같이 연주하는 사람 혹은 사람들 이었다.
나의 첫 합주는 동네 학원에서 서울 시내의 보다 큰 학원으로 레슨 장소를 바꾸면서 이루어졌다. 다른 악기를 연주하는 취미 연주자들과 함께 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신기하고 떨렸던지. 그래서 나는 첫 합주에서 혼자 캐논 변주곡을 두 배로 빠르게 불었다. 그때서야 나는 내가 박자 세는 감이 남들보다 부족하다는걸 알았다. 당연히 엄청 당혹스럽고 좌절스러웠지만 그래도 잘 해내고 싶다는 의욕도 함께 들었다. 그 이후 제대로 내 파트를 해내려고 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자연스럽게 합주 연습도, 개인 연습도 중단되었다. 하지만 다섯명 남짓한 인원이 함께 같은 곡을 연주했을 때 느낀 재미와 화음의 묘미는 내 머릿속에 깊이 남았고, 2년 뒤 지금의 직장인 오케스트라에 도전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혼자 연주하냐, 함께 연주하냐는 모두 장단점이 있다. 하지만 취미 연주자일수록 함께 연주하는 경험이 뜻깊다. 연습의 당위성이 그닥 와닿지 않는 취미생이라면 함께 연주하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으로 연습해야하는 이유를 얻을 수 있다. 자신의 실력이 궁금한 취미생이라면 다른 사람들의 소리를 통해 스스로 겸손함을 되찾거나 자부심을 얻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악기 배우는게 지루해진 취미생이라면 다른 사람들과 맞춰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도전 과제를 발견할 수도 있다. 처음 악기를 배우는게 나의 세계를 한 단계 넓혀주는 경험이었다면, 합주는 거기서 또 한 단계 깊게 들어가는 경험이었다. 교향곡 악보는 이렇게 생겼구나, 다른 악기들은 이런 소리가 나는구나, 박자는 이렇게 세는구나, 이래서 빠르기와 셈여림이 있구나, 이렇게 멀리서도 연습하러 오시는구나, 이런 방법으로도 연습할 수 있구나 등등. 직장인 10년차면 이젠 처음 해보는 일보다 전에 해봤던 일이 더 많다. 하지만 악기 연습, 합주 연습의 세계는 아직도 배워야할 것들 투성이다. 그리고 이 배움은 힘든 것보다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그러니까 내일은 다음 합주 준비를 위해 꼭 연습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