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중독에서 벗어나다

발전

by slow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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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 대학생이 되면서부터 거의 하루에 한 번꼴로 카페를 가던 사람이었다. 그 나이에 스타벅스 골드레벨을 찍고 15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다. 카페에 가기 위해 아침에 일어나 화장을 하고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던 날이 셀 수 없다. 가족이 있는 집에서 벗어나 도착한 카페는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가족들이 특별히 나를 찾거나 방해한 적이 없는대도 나는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학창 시절 어느 날에는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컴컴한 어둠 속에 혼자 벤치에 한참을 앉아있다 들어간 날도 많았던걸 보면 말이다. 그런 핑계로 나는 카페를 끊을 수 없었다. 그만큼 나에게 카페는 소중한 곳이었고, 그 덕에 카페는 나의 무분별한 소비에 큰 역할을 했다.


20살이 되면서부터 나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꼭 하는 일이 있었다. 바로 서점에 있는 카페에 가기. 부지런히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하고, 버스를 타고 동성로를 간다. 그리고 교보문고를 간다. (교보문고는 여전히 나의 아지트 같은 장소다. 어느 지역이든.) 그 시절 교보문고는 바닥에 앉아서 책을 읽어도 뭐라 하지 않을 만큼,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자유로운 문화가 자리 잡혀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절대 바닥에 앉지 않고, 두세 권의 책을 쇼핑을 하고 꼭 2층에 있는 카페로 갔다. 배고픈 날엔 샌드위치 하나와 커피 한 잔, 분위기를 내고 싶은 날엔 컵케이크와 커피 한 잔, 그렇게 주문을 하고 몇 시간씩 앉아 책을 읽었다. (이렇게 하면 하루에 10만 원은 거뜬히 쓴다.)


독서는 어려서부터 취미였다. 책을 많이 읽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엄마는 늘 전집을 한가득 사주셨다. 침대는 없어도 책장에 책이 가득 꽂혀있는 집에서 자란 데다 워낙 성향이 혼자 곱씹기를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레 책과 친해졌다. 그런 취미를 커피 향이 솔솔 나는 깨끗한 공간에서 즐길 수 있다는 건 정말 행복했다. 왠지 집중이 더 잘되는 것 같은 느낌. 게다가 '카페에 혼자 나와 책 읽는 사람'이란 지적인 이미지는 나를 빠져들도록 하기에 최적이었다. '된장녀'라는 단어가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단어이든 아니든, 조금 다른 레벨의 문화를 즐기는 사람으로 보여서 좋았던 나에게 '카페에서 책을 읽는 취미'는 지적 허영을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 재테크를 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카페에 쓰는 돈을 아까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의 습관을 따라 하다 보면 당신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지만, 그게 어디 쉽나. 나에게 너무 소중한 장소였고, '커피 한 잔 쓰는 돈 아껴서 뭘 얼마나 큰돈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카페에서 책 많이 읽고 열일해서 돈을 더 많이 벌게 되면, 이 커피 한 잔 값쯤이야.' 하며 더 큰돈을 벌기 위한 투자의 일종이라 생각하며 마음 놓고 커피를 마셨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는 당당히 얘기할 수 있다. 나는 카페에 잘 가지 않는다.

카페로 가는 발걸음이 뜸해진지는 6개월쯤 되었다. 아주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거나,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다. 카페에 쓸 돈과 시간마저 없었다고 하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지난 2년간 페어에 참가하면서, 참가비와 제작비를 감당하느라 가계가 휘청거렸다. 쓸데없이 완벽주의를 고집하느라 나의 수준에 한참 벗어나는 소비를 했던 탓이다. 그러던 와중에 지난 2025년 12월, 크리스마스 시즌에 참가하는 서울일러스트레이션 페어에서는 조금 색다른 제품을 만들어보기로 결심했는데, 바로 '질문노트'다. 3년 전에 접었던 노트 제작을 다시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동안의 경험을 담아 새롭게 노트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노트를 끝까지 쓰지 못하는, 의지가 약한 사람들을 위해서 매일 달라지는 질문을 넣으면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시간과 계획에 대한 질문을 넣은 시간일기, 그리고 식사와 감정에 대한 질문을 넣은 식사일기, 이렇게 두 가지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렇게 계획하고 보니 9월부터 나는 할 일이 정말 많았다. 노트에 들어갈 그림을 그려야 했고, 노트 페이지를 전부 편집하고, 노트에 들어갈 질문도 다듬어야 했다. 노트만 내놓기에는 초라할 것 같아서 엽서며 책갈피며 다른 것들도 제작했다. 처음으로 바코드를 도입하면 어떨까란 생각으로 바코드도 일일이 만들고 포장해서 붙였다. 그러다 보니 이전에 참가해 봤던 다른 페어들보다 할 일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어림잡아 3배, 4배는 됐던 것 같다. 그게 카페를 끊게 된 계기다.


미친듯한 일정과 해야 할 일들을 기한 내에 잘 해내야 한다는 강박, 그래서 나는 전에 없던 집중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카페에서는 '미친듯한 집중력'까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이전에 나는 카페에서 일하는 것이 더 집중이 잘 됐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카페에 나와 여유롭게 작업을 즐긴다는 기분, 여러 사람들을 관찰할 수 있는 재미와 흥미로움, 낮 시간에 카페에 올 수 있다는 자유로움, 그런 것들 내려놓고 200% 효율적으로, 기간 내에 내가 원하는 만큼의 일을 해내겠다는 생각에만 집중하고 보니 카페는 나에게 방해가 될 뿐이었다. 그 당시의 나는 집중력에 도움이 됐다고 느꼈던 카페의 소란스러움을 조금도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작업실에 틀어박히게 됐다.


집에서 밥을 먹고, 작업실에 바로 출근을 한다. (맞다. 나는 작업실이 따로 있다. 그러니까 예전에는 작업실을 쓰느라 돈을 내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느라 돈을 냈다는 얘기다.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차를 우리거나 커피를 한 잔 내리고 곧장 작업에 돌입한다. 본업 전까지 서너 시간,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고 계속 일을 했다. 내가 해내겠다고 욕심낸 일에 집중을 한다. 그렇게 한참을 작업하고 다른 일을 하기 전에 잠깐 쉬는 타임이 되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몇 시간 동안 심각하게 집중을 하면 그럴 수도 있다는 걸 이때 깨달았다. 숨 고르기를 한참 하며 쉬다가 다음 할 일을 했다.


그렇게 카페는 자연스럽게 나에게서 멀어졌다. 커피도 조금 멀어졌다.

카페에서 콘센트가 있는 자리를 찾아 다닥다닥 붙어있는 카공족들을 이제는 귀엽게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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