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
'빚도 능력이다' 누가 그랬을까. 그 말을 철석같이 믿으며 몇 년을 살아왔는데, 이제는 그 미련함을 버려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2025년 4월, 카드 한도조정 예정 문자를 받았다. 절대 벌어져서는 안 되는 일이란 생각에 남아있던 돈을 털어 날리며 신용점수를 회복하려 애를 썼다. 그리고 2025년 12월, 나의 신용점수는 700점대를 회복했고 끔찍한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기념으로 지난 1년여를 돌이켜보니, 그 살얼음판을 어떻게 지내왔나 싶다. 얼마나 정신없이 소비를 했는지 감탄도 하면서.
700점대로 신용점수는 회복 됐지만, 내 삶은 여전히 '돈'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매일 일을 했지만, 매일 돈에 허덕였다. 1000만 원에 달하는 리볼빙 이월금액과 그동안 쌓아둔 할부를 감당하느라 월세를 내지 못하는 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것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여러 대출 이자도 밀리지 않으려 애를 쓰고 있었으니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삶은 여전했다. 그렇다. 신용평가사에 '회복의 조짐을 보인다'는 신호만 줬을 뿐, 나는 여전히 캄캄한 구덩이에 빠져있는 상태였다.
끝을 내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난겨울부터 1년이나 시달렸다. 월말마다 카드값 독촉 전화에 남몰래 시달렸다. 당당하게 내 돈으로 갚을 수 없을 때는 '이 많은 돈을 누구한테 또 빌릴 수 있을까' 생각하며 좌절감에 빠졌다. 단짝 친구에게 매번 하기 싫은 소리 하며 민폐를 끼치는 것도 그만하고 싶었다. 남자 친구 앞에서 엉엉 우는 것도 그만두고 싶었다. 10년 간의 자취생활을 해오며 절대 말하고 싶지 않았던 주머니 사정을 엄마에게 털어놓아야 했을 때는 정말 죽고 싶었다. 돈 없으면 더 춥다는 말과 함께 엄마의 100만 원이 입금되었을 때, 몇 시간이나 울었는지 모른다.
이 모든 일을 2025년을 끝으로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결심하고 보니 쌓아둔 빚이 많았다. 세상에 빚은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그렇게 생각해 본다. 앞서 말한 '빚도 능력이다'에 해당하는 빚과 그렇지 않은 빚. 내가 갖고 있는 것들은 죄다 그렇지 않은 것들 뿐이었다. 기분 내키는 대로 소비하느라 쌓인 빚들이다. 언젠가는 해결되겠지, 싶은 마음으로 외면했던 것들을 하나씩 써봤다.
- aa은행 신용대출 잔액 450만 원
- bb은행 홀씨대출 잔액 150만 원
- cc은행 비상금대출 200만 원
- dd은행 비상금대출 100만 원
- ee보험 담보대출 300만 원
- ff카드 리볼빙이월금액 1000만 원
부모님에 대한 마음의 빚 6000만 원과 연금 미납금까지 합하면 8000만 원이 넘는 금액. 미쳤다. 대차게 사업을 벌인 것도 아니었는데, 이 돈을 어떻게 쓴 걸까.
빚이 이렇게나 불어나는 데에는 돈을 대하는 나의 태도의 탓이 클 것이다. 그동안 나는 로또 당첨을 바라며 정기적으로 복권을 사는 사람들을 마음속으로 '멍청이'라고 여겨왔다. 적은 확률에도 일확천금을 노리며 돈을 쓰는 행동이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했던 거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언젠간 큰돈을 벌겠지', '이렇게 노력하다 보면 수입이 늘어나는 날이 오겠지', '그때가 되면...'이라고 바랐던 나의 마음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걸 말이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일확천금을 꿈꾸던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복권에 당첨되기가 쉽지 않듯, 어느 날 갑자기 큰돈을 벌어들일 확률도 높지 않다. 온라인 부업과 스마트 스토어 운영 등 월 천 벌기 쉽다는 말들이 어렵지 않게 들려오는 세상이다. 그만큼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세상인가 보다. 그렇지만 내가 만들어낸 무언가로 나와 내 제품이 동시에 잘되길 꿈꾸는 나에게는 조금 먼 이야기인 것 같다. 적어도 지난 3년 간의 경험으로 낸 결론이다.
일을 벌이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해결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얼마나 바닥을 치고,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실험을 해봤다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다행이다. 배운 점도 있어서. 아무튼 나는 또 한 번의 결심을 해야 했다. 빚을 갚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