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지옥에서 벗어나게 해 준 것들

성장

by slowphy



옷과 화장품에 관한 소비가 줄어든 지는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적어도 3년은 됐을 거다. 누군가에게 조금은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경험담을 써보려 한다.


'미니멀라이프'에 대한 관심과 '시간'에 대한 욕심 덕분이었다.


30대 초반의 나는 미니멀라이프에 푹 빠져있었다. 집안에 자잘한 것들을 원래도 쌓아두기 싫어했었지만, 서랍장 안에는 늘 정리되지 못한 물건이 가득이었다. 미니멀라이프에 관심 갖기 시작한 초반에는 몇 날 며칠을 물건을 버리고 서랍을 비우고 정리하는데 시간을 썼던 것 같다.



화장품 버리기


일단 화장품 샘플. 나는 알뜰한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어디선가 공짜로 주는 것들을 살뜰히 모아다 잘 활용하지 못한다. 게다가 피부가 민감한 데다 성격도 예민하며 호불호가 강해서 그런 것들을 잘 쓰지 못하는 편이다. (어디선가 선물로 주는 수건을 걸레로도 못쓰는 얄궂은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주는 건 주는 대로 거절을 못해서 쌓아놓은 화장품 샘플들이 가득했다. 그걸 담아두느라 작은 플라스틱 서랍장까지 사뒀을 정도였다. 그걸 다 버렸다. 며칠 내로 당장 쓸만한 것과 관심 가는 것을 제외한 몇 가지를 빼고는 전부 버렸다. 그리고 몇 년간 쓰던 플라스틱 서랍장도 다 버렸다.


화장대 서랍장을 가장 많이 차지하는 것은 립 제품들이었다. 한 번씩 친구와 백화점 구경을 갔다가 재미 삼아 샀던 립스틱이나 틴트들. 하나에 적어도 4만 원, 5만 원 하지만 잘 쓰지도 않는 그런 애물단지들이었다. 말을 많이 하는 본업을 가졌고, 그 덕에 물을 자주 마신다. 그래서 유지력이 아무리 좋다는 립을 발라도 그때 뿐, 오래가지 않는다. 그래서 비워보기로 결심했다. 종이 한 장에 갖고 있던 립제품들을 모조리 발랐다. 색깔을 비교해 보기 위해서였다. 그때 찍은 사진이 남아있으면 좋았을 텐데, 어찌나 소나무 취향이던지 그 색이 그 색깔인 것들이 많았다. 하늘아래 같은 컬러 없지만, 남이 봐서는 뭘 발랐는지 알 수 없는 것들. 겹치는 것들과 잘 손이 가지 않은 것들은 전부 다 비워내고 딱 두 가지만 남겼다.


그러면서 색조화장품들도 쓰지 않는 것들은 전부 다 비웠고, 손이 잘 가지 않는 것들도 전부 버렸다. 한때는 뷰티 유튜버만큼이나 화장품을 모으던 사람인데, 이렇게 바뀔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지금은 4구 아이팔레트 1개, 치크컬러 2개, 하이라이터 1개, 파운데이션 팩트 1개, 세범 파우더 1개, 립 컬러 3개와 아이라이너, 아이브로우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화장품 줄이기를 실천하며 얻은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나는 어렸을 때 집 앞 편의점을 갈 때에도 꼭 화장을 하고 나가야 하는 사람이었다. 나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겉모습이 완벽하지 않으면 어느 곳에도 갈 수 없었다. 그런데 미니멀라이프에 관심을 가지면서 그런 집착이 많이 줄었다. 덕분에 생각과 행동이 자유로워졌다.



옷 사지 않기 옷 버리기


20살이 되자마자 10년이 넘도록, 나는 옷을 사는데 가장 많은 돈을 썼을 것이다. (직접 세보지는 않았으니 알 길이 없지만 가장 자주 사고 가장 자주 버린 게 옷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적어도 20만 원어치의 옷을 샀고, 한번씩 쇼핑을 나가서 눈에 띄는 것들이 있으면 또 샀다.


그런데 문제는 옷을 아껴입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 아껴입을 만한 옷을 사지 않은 것도 문제였지만, 쉽게 사서 쉬이 입었으니 그만큼 옷을 아껴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세탁하기 귀찮아서 옷을 버리고 쇼핑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입고 나온 착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쇼핑을 해서 옷을 갈아입고, 입고 나온 옷은 짐이 된다는 이유로 버리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나는 그렇게 대책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생각 없이 살던 사람이 한순간에 철이 들리는 없다. 오랫동안 그런 짓을 반복했고, 옷을 채워 넣고 다시 버리길 반복했다. 그러다 좁아터진 집에 살면서 옷 무더기와 씨름하는 일이 슬슬 질리기 시작했다. 집에 옷을 보관할 수 있는 양은 한정적이었고, 겨울과 여름이 지날 때마다 나는 옷을 버려야 했다. 새 옷을 둘 자리가 없었으니까.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원래도 옷 버리는 것을 잘했는데, 1년 동안 입지 않은 옷은 칼같이 버렸다. 그럼에도 나는 매해 버려야 할 옷들이 생겼고, 그 짓이 바보 같은 짓이라는 걸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나는 '시간활용'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욕심이 순식간에 치솟았다. 이전에 쓴 글을 읽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5분 단위 플래너'를 만들던 시기였다. 5분 단위로 시계를 쳐다보고 시간관리를 하려고 애를 썼다. 그만큼 시간 한 톨 한 톨을 아껴 쓰려고 했다. 5분 단위로 시간을 체크하다 보니 저절로 그런 생각이 들더라. 아무튼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쇼핑을 하고 싶어 져서 어플을 켰다. 꼭 사야 할 것은 없었지만 뭔가 마음에 드는 걸 발견하면 사겠다는 생각으로 스크롤을 한참이나 내렸다. 소파에 게으르게 기대어 누워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내 모습. 한심했다. 이렇게 시간을 들여 옷을 사놓고는 또 옷을 버리겠지. 돈보다 시간이 아까웠다. 신물이 났다. 이 짓을 10년 넘게 해왔다니. 그만둬야겠다 싶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쇼핑 어플을 잘 들여다보지 않게 됐다. 꼭 필요할 때는 자주 방문하는 웹사이트 하나만을 본다. 이제 예전만큼 옷을 버리지도, 사지도 않는다. 오히려 단출하니 매일 입을 옷이 정해져 있다는 게 마음이 편하다. (옷이 많다고 해서 매일 색다르게 입지도 않았다.) 시간도 줄이고 스트레스도 줄이고, 지출도 줄일 수 있었다.



지출을 줄이고 싶은데 쇼핑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미니멀라이프에 관심 가져보시길 추천한다. 시간에 대한 관심까지 가져본다면 더 효과 만점일 것이다. 좋아하는 자기 계발서들에는 '청소력'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온다. 그만큼 정리정돈과 청소가 가져다주는 힘은 크다. 그리고 나는 '비워낸 자리에 새로운 기운이 깃든다'는 말을 좋아한다. 마음이든 공간이든 빈자리가 있어야 새로운 것이 들어올 수 있다. 그것이 운이든 돈이든 말이다. 나는 이렇듯 쇼핑지옥에서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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