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고 말해준 사람

‘잠깐 쉬어도 돼.’ 그 말이 나를 붙잡았다

by 느린 아빠

그날, 차에 올라탔을 때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생각은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지만
입은 도무지 떨어지지 않았다.


운전대를 잡고 천천히 집으로 향했다.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간.
그런데 집으로 가는 길이
이렇게 멀게 느껴진 건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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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문을 열자
아내가 반갑게 나를 맞았다.


늘 퇴근 무렵이면 지친 얼굴로 돌아오던 내가
그날은 평소보다 일찍 집에 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내는 환하게 웃었다.


나는 신발을 벗으며 입을 열었다.
“나… 회사 그만두게 됐어.”


아내는 잠깐 고개를 갸웃하더니
곧바로 평소처럼 밝은 얼굴로 말했다.


“그동안 고생 많았잖아.
잠깐 쉬어가도 괜찮아.”




그 말은 마치
미리 준비해둔 문장처럼 가볍게 들렸지만,
나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내가 가장 두려웠던 반응은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무슨 계획은 있어?” 같은 질문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그 어떤 것도 묻지 않았다.




속은 속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섭지 않았을까.
이제 당장 생활비는 어떻게 해야 하나,
앞으로는 뭘 하게 될까,
그 모든 게 머릿속을 휘감았을 텐데.


그런데도 아내는
그저 괜찮다고 말했다.
그 한마디가
그날 내게는 너무 크게 들렸다.




저녁 식탁에 마주 앉아 있을 때도,
아이들이 떠들며 장난을 걸어올 때도
아내는 평소처럼 행동했다.


그날 저녁 식탁은 평소보다 더 풍성했다.
내가 좋아하는 반찬들이 잔뜩 올라와 있었다.
된장찌개엔 소고기가 들어 있었고,
계란말이, 고등어조림, 김치전까지
거의 생일상처럼 느껴졌다.


아이들이 물었다.
“오늘 누구 생일이야?”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잘 먹어야 힘 나지.”
아내가 웃으며 대신 답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입안에 든 밥을
한참이나 씹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참 단단한 사람이구나.
그때 처음으로 그렇게 느꼈다.


내가 무너지는 걸 본 적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자신이 먼저 흔들리면
내가 더 불안해질까 봐 그랬던 걸까.




그날 밤,
불 꺼진 거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문득 떠올랐다.


나는 지금까지 몇 번이나
‘고맙다’는 말을 했을까.


잘 살아보자고 약속하며
손을 맞잡았던 날.
그 다짐을
나는 잘 지켜왔던 걸까.




이런 상황에서도
나보다 나를 더 걱정해주는 사람을
나는 앞으로 어떻게 지켜야 할까.


‘괜찮아’라는 그 말이
내게 얼마나 큰 울타리였는지
그제야 알았다.


그녀가 말한 ‘잠깐’은
어쩌면 아주 긴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괜찮다고 말해준 사람.


나는 아직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했지만,
그 말 덕분에
오늘 하루를
무너지지 않고 통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