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아빠’라는 말이 어색한 나에게

조금은 늦은 시작

by 느린 아빠

‘아빠’라는 단어가 낯설었던 건,

처음 아이가 태어났을 때가 아니었다.

오히려 시간이 꽤 흐른 지금,

어느 날 갑자기 그 단어를 입에 올릴 때마다

느껴지는 묘한 거리감 때문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아빠”라고 불렀을 때,

나는 무의식적으로 주변을 둘러본다.

아직도 이 말이 나를 부르는 거라는 걸

순간적으로 인식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만큼 나는, 그 자리에 완전히 익숙하지 못한 사람이다.



처음엔 그저 부끄러움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뭔가 부족해서,

아빠 역할을 잘하지 못해서 그 이름이 불편한 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 날,

아이와 둘이 마주 앉아 있는 시간에도

그 단어는 나와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아빠라는 자리에 ‘갑자기’ 들어왔다.

회사에서는 상사였고,

집에서는 잠깐 얼굴 비추는 사람이었다.

하루 중 아이와 마주하는 시간은

아침 출근 직전과 잠들기 전, 그 사이 어딘가뿐이었다.



어느 순간, 나는 퇴직했고

매일 집에 있는 사람이 됐다.

하지만 ‘있다’는 것이

‘역할을 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처음 며칠은,

잠시 휴직 중인 사람처럼 지냈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달라졌다.

아이의 눈빛도, 아내의 말투도,

그리고 내 안의 감정들도.



아이를 등교시키고,

놀이터에 데려다주고,

책을 읽어주는 일을 하면서도

나는 어딘가 어색했다.

익숙해지려는 노력을 하고는 있는데,

정말로 익숙해지는지는 잘 모르겠는 나날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넘어져서 울었다.

그 순간 내가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아이를 안았고,

아이도 망설임 없이 내 품에 안겼다.



“괜찮아. 아빠가 있잖아.”



내가 그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 말을 내뱉는 나 자신이, 가장 놀랐다.


그런데도 아이는 당연한 듯 나를 "아빠"라고 불렀다.

질문을 하고, 기대를 하고,

가끔은 투정을 부렸다.

그 모습 속에서 나는 조금씩

‘내가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배워가고 있었다.



언젠가 아이가 물었다.

“아빠는 어릴 때 꿈이 뭐였어?”



그 질문 하나에 숨이 턱 막혔다.

어릴 적 나에게는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이 꿈이 아니었다.

그건 그저 세월이 지나면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지는 역할인 줄 알았다.

그래서 준비하지 못했다.

그래서 더 어색한 거였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꿈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매일,

그 이름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조금씩 연습하고 있다.



아이의 눈동자 속에서 나를 다시 보는 순간들,

어색했던 그 단어가

조금은 따뜻하게 들리는 순간들.



누군가에게 기대어도 괜찮은 존재로,

때론 실수해도 괜찮은 존재로

천천히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나는 아직, 아빠라는 말이 조금 어색하다.

그렇지만 그 어색함 속에서

나는 나를 다시 만들어가고 있다.



조금은 늦었지만,

그래도 도착하고 싶은 자리.

그 자리를 오늘도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