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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 이름은 초록 Dec 08. 2022

냉정과 열정사이, 휴직과 재직사이

휴직에 대한 열정이 불타오른다면, 냉정하게 이것부터 짚어보자구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이 말은 회사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회사가 싫으면 니가 떠나라는 식으로 말이다. 

절에 있는 중은 고민이 된다. 

절을 떠나지 못하는 중에게 사실은 절에 대한 희망이 남아 있는거다. 




13년간 한 직장에서 일했다. 수도 없이 휴직과 퇴사를 고민해보았지만, 실천에 옮긴 적은 없었다. 

열심히 해온 일에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거나 적절한 고과나 보상이 따르지 않았을 때 회사에 대한 괘씸한 마음에 품어본 생각들이었다. 


그러나 고민 끝에, 2020년 11월 10일, 마음을 굳히고 팀장님께 의사를 전달했다. 

일주일간의 회유와 설득이 이어졌지만 마음은 변치 않았고, 그 이후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12월 8일부 나는 휴직에 들어갔고, 단 한번도 후회하지 않고 휴직생활을 보내고 있다. 


머리만 싸매고 고민했다면, 결론은 못내고 고통속에 계속 회사를 다녔을 것 같다. 나는 휴직을 결정하기 까지 아래 3가지를 차례로 고려했고, 그 결과 내 결정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확신하기까지의 과정을 나와 비슷한 고민인 직장인이 많을거라 생각하기에 공유해보고자 한다. 




1. 휴직의 이유를 명확히 한다. 


나와 같이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의 휴직 소식은 어쩌면 그리 놀랄 일도,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러나 사실 그 이면에는 '육아' 외에 휴직에 방아쇠를 당기는 결정적인 요인들이 있다. 


내 경우엔 나의 정신건강의 문제를 알아차린것이 그것이었다. 

이 또한 원인을 생각해보면, 몸 담은 조직과 사람에 대한 실망감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당시 나의 건강하지 못한 정신이 가족까지 병들게 하고 있었으므로 

나의 첫번째 휴직의 이유는 정신과 육체의 건강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회사에 더이상 헌신하고 싶지 않았다. 

좋은 고과, 인정, 승진 따위가 요구한다고 해서 받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열심히 일하고 성과를 냈고 기여한 바가 있다면 받는게 마땅하다. 

회사와 나의 관계는 Give and Take가 되어야 했다.

이 세계가 이토록 정의롭지도 우아하지도 못할 줄 알았다면 차라리 아이들 입학식과 학예회에 당당히 연차를 내고 참석하고, 내 몸을 혹사하며 새벽까지 일하진 않았을거다. 기꺼운 헌신을 내 소중한 가족에게 하고 싶었다. 




2. 이유가 명확해 졌다면, 과연 휴직이 BEST 일지 점수를 매겨본다. 


엄청난 데이터를 근거로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머릿속 고민을 꺼내 간단히 적어보고 내가 가진 대안들에 점수를 한번 매겨보기를 권한다. 


아래는 휴직을 결정하기 전 내가 실제로 적고 점수를 매겨본 쪽지이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쭉 적고, 내가 취할 수 있는 3가지 옵션에 따른 점수를 매겨본다. 


중요한 가치는 아이들과의 시간 확보, 정신과 육체의 건강, 가족과의 관계 회복 등도 있었지만, 

현실적인 것들도 중요했다. 이를테면 속물적이긴 하지만 회사 타이틀이 주는 만족감도 나에겐 중요했다. 


9가지 가치를 쭉 적고 재직/퇴직/휴직 순으로 점수를 매겨보았다. 놀랍게도 퇴직은 최저점으로 최악의 선택이란 결론이었고, 휴직은 높은 점수차로 최선의 선택임을 알 수 있다. 


이 방법은 언젠가 읽은 책에서 무언가를 할지 말지 고민일때 간단히 써보라며 제안해준 것인데(어떤 책인지 제목을 모르겠다ㅜㅜ), 책을 읽었을 당시엔 재직이 휴직을 근소한 차로 앞섰던 기억이 있다. 


중차대한 결정에 이런 산수를 적용한다고? 싶을 수 있으나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꽤나 명확해지는 경험을 나는 했으므로 권하고 싶다. 




3. 휴직이 BEST라 결론이 났다면, 휴직 기간의 생활비에 대해 대안을 세운다. 


위의 2가지 단계를 거쳐 휴직을 선택했다면, 이제 현실적인 항목을 냉정하게 따져보길 권한다. 


나는 맞벌이 부부에 초등학생, 유치원생 2아이를 키우고 있다. 

여든이 넘으신 양가 부모님께는 매달 생활비도 드리고 있었고 2년전 매매한 집에 대한 대출 상환이 아직 진행중이었다. 


휴직을 정말로 실행하려면, 

휴직 기간동안 외벌이로 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을지 배우자와 진지하게 상의해보아야 한다. 

휴직 최소 1~2달전 월간 가계에 들어가는 비용을 빠짐없이 정리해, 휴직기간 동안 조달법을 합의하자.


휴직기간 동안 나를 찾고 싶다, 정신 건강을 회복하고 싶다, 정말 해보고 싶은 일에 도전해보고 싶다 등 낭만적 계획도 경제적 대책이 뒷받침 되어야 가능하다. 


나의 경우, 맞벌이를 하며 따로 급여를 관리했다. 총 부담금액이 비슷하게끔 집에 필요한 생활비 항목을 각각 나누어 출자?하는 식이었다. 공과금, 대출금 상환, 부모님 용돈 등은 남편이 부담하고 생활비,아이들 학원비는 내가 부담했다. 

나의 상태와 휴직에 대한 의지를 알게 된 남편이 감사하게도 급여를 나에게 공개, 권한을 넘겨주었고 나는 그 안에서 약 2년으로 계획된 휴직기간의 생활비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물론 맞벌이 때에 비해 여러 항목을 줄이는 계획이 수반되었다. 휴직기간 비용절감에 크게 기여했던 공공기관을 이용한 자아실현에 대해서도 다음글에서 언급하겠다. 

(그리고  만약을 대비해 개인적으로 보유하고 있던 외화와 금반지 처분 계획도 포함시켰다 ^^;) 





휴직이라는 제도를 십분 활용해 내 인생을 보살피고 커리어를 위한 다음 도약도 힘차게 해보자! 

아직 절이 좋아 미련이 남은 중에게. 휴직은 최고의 옵션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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