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한지영 1호: 내 인생 4막을 위한 다시 한지영
1. 한지영
주간 한지영을 발간하며 열일곱 살 때 이후로 쓰지 않던 옛날 이름을 꺼냈다. 아주 오랜만에 불러보는 이 이름은 내 이름인 듯 아닌 듯 어색하다. 지영아, 한지영 하고 친구들이 마지막으로 불러주던 고등학생 때로 돌아간 것 같아 쑥스럽기도 하다. 왜 굳이 안 쓰는 옛날 이름을 꺼냈을까? 요즘 말로 근자감이라고 하는 근거 전혀 없는 자신감에 철철 넘쳐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을 때가 그리웠을까? 그보다 내 이름을 좋아했다. 자부심도 은근 있었다. 지영은 그때도 흔한 이름이었지만 한지영은 귀했다. ‘한’씨가 워낙 흔하지 않은 성이기도 하고 ’한’이라고 발음할 때 혀가 천정에 딱 붙으며 자아내는 독특한 울림을 좋아했다. 여태까지 살면서 ‘한’ 씨를 안 좋아하는 사람을 못 봤다. 한지영. 한자로 한나라 한에 지혜 지 빛날 영을 쓰는 한지영으로 열일곱 해를 살았다.
열일곱 살 그러니까 고등학교 2학년 여름 방학이 끝나갈 무렵 나는 친구들과 고 3, 입시 걱정하다 느닷없이 미국에 왔다. 부모님은 혹시나 공부 안 하고 바람들까 봐 우리 사 남매에게는 극비로 오랫동안 차곡차곡 이민 준비를 해놓고 영주권을 받자마자 어느 날 ‘서프라이즈! 우리 미국 간다’고 선포하셨다. 다 버리고 가니 짐도 쌀 거 없다 하시며 달랑 이민 가방 여덟 개에 부모님과 언니 남동생 둘 우리 여섯 식구의 전 재산을 담아 왔다. 그 당시 사십 대 중반을 넘겼을 부모님은 다 큰 자식 넷을 데리고 (그때 언니는 대학생이었다) 일가친척 하나 없는 바다 건너 새로운 나라에 순전히 자식들의 앞날을 위해 이주를 감행한 것이다. 그게 얼마나 엄청난 일이었던가는 내가 그 나이가 되어 아이를 둘 키워보고서야 알았다. 나는 감히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2. Theresa Hahn
어쨌거나 그때 미국에 오면서 영주권 서류에 우리는 어려서부터 썼기 때문에 친숙한 세례명으로 법적 이름을 다 바꾸었다. 테레사 지영 한 Theresa Jiyoung Hahn. 한국 이름이 미들네임에 들어가긴 했지만 이제 지영이라고 부름 받을 일은 사라졌다. 당시에 대부분 ‘한’ 씨는 Han으로 많이 표기를 했다. 영어를 하는 아버지께서 Han은 미국 사람들이 ‘핸’으로 발음하고 Ham이라고 놀림감이 될 수도 있다며 제대로 ‘한’ 발음이 되는 'Hahn'으로 표기하셔서 한국인 라스트 네임이라는 선입관이 별로 없었다. Theresa 역시 미국식 발음이 어려워 한국사람이 발음하기 쉽지 않은 단점이 있지만 그리 흔한 이름이 아니라 그럭저럭 Theresa Hahn으로 사는데 만족했다. 다른 아무 성을 다 갖다 붙여도 Theresa 에는 Hahn 이 젤 제격인 것은 자타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로부터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며 십구 년을 Theresa Hahn으로 불리며 살았다. 한지영이라 불러주는 사람은 사라졌다.
3. Theresa Kim
서른다섯 늦은 나이에 남편을 만나 결혼했는데 남편 성이 한국 성중 젤 흔한 ‘김’ 씨더라는. 미국법을 준수하는 착한 시민으로 운명을 받아들여 라스트 네임을 바꾸어 지금까지 Theresa Kim으로 불리며 살고 있다. 어느새 이 이름으로 살아온 세월이 젤 길다. 그러니 이젠 그전 두 이름 보다 Theresa Kim이 더 친숙하지만 그래도 ‘김지영’은 영 아니다. 가끔 한국 이름을 물어오면 얘긴 하는데 부를 일도 없고 불러주는 사람도 없으니 이상하다. 서른 넘어서까지 싱글로 오래 사회생활을 한 데다 원래 결혼 전 라스트네임에 자부심이 강했던 내가 굳이 내 라스트 네임을 킵 하거나 hyphen을 써서 Hahn-Kim 이런 식으로 라도 하지 않은 이유는 복잡한 게 싫어서. 뭐 내가 내 이름 내건 유명한 연예인이나 정치가도 아니고. 남편과 내가 Mr & Mrs Kim 이 아니고 Mr. Kim & Mrs Hahn 이 되면 아이들이 미국 사회에서 정서적으로 헷갈리지 않겠는가. 학교 갈 때도 골치 아플 일이 많다고 들었다. 앞으로 이혼을 하지 않는다면 나는 이 이름으로 죽을 때까지 살아가리라.
4. 다시 한지영
나의 한국 이름을 불러주는 오랜 친구가 딱 한 명 있는데 어느 날 친구의 전화기에 ‘한지영’ 이름이 뜨는 것을 보고 ‘어머 내 옛날 이름과 똑같은 사람이 있네’라고 할 뻔. 낯설었다. 지금도 어색해. 지영아 할 때 하고 또 한지영이라 쓰여있는 걸 볼 때 하고 다르다. 글 쓰는 사람으로 나머지 인생에 또 하나의 Identity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소설가가 꿈이었던 시절의 옛 이름을 소환하여. 머지않아 아이들이 독립하고 직장도 퇴직한 후 펼쳐질 내 인생 4 막장을 위해 지금부터 무엇을 준비하면 될까 하고 조바심 반 기대 반의 시간을 보내는 요즘이다. 주간 한지영에서 무엇을 쓰게 될지 아직 모른다. 차곡차곡 접어 깊숙한 곳에 넣어두고 오랜 세월 펼쳐보지 않은 어떤 얘기들이 서로 막 나오려고 할 수도 있고 노처녀 구제해 주었다고 으스대는 남편과 살아온 얘기일 수도 있고 바라만 봐도 든든한 큰 딸, 나랑 똑같아서 티격태격하는 사춘기 둘째 딸과 지지고 볶는 얘기 일 수도 있고. 주절주절 나와 얘기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얘기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용기를 내어봤다. 주간 한지영 개봉 박두! 기대하시라!